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D+-0. 이제서야 적는 마무리.
    코이카 2016. 3. 20. 23:45
    반응형

    1.

    이미 귀국한지가 4개월이 넘었으니 지나치게 늦은 마무리다. 어떤 방식으로든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귀국한 직후에는 혼란스러워서, 한참 취직 전선에서 패배를 반복할때는 내 코가 석자라서, 취직한 후 지금까지는 일하고 쉬기 바빠서 적지 못했다. 사실은 다 핑계다. 길어야 한시간이면 다 쓸 수 있을 글을 지금까지 적지 않았던 것은, 내 안에서는 아직 정리가 끝나지 않은, 그리 단순하지 않은 문제였기에 눈을 돌리고 있었던 것 뿐이다. 그렇다고 마냥 미뤄둘 수는 없겠고, 그렇다고 나서서 쓰기는 싫었으니 어쩌면 난 이 혼란이 삭아서 앙금으로 가라앉아 세월에 씻겨나가길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2.

    날이 급격하게 봄이 되었고, 아직 겨울 옷을 정리하지 못한 가운데 바람막이를 꺼내 입었다. 주머니를 뒤지니 무언가 꼬깃꼬깃 접은 종이가 잡혀 아마도 영수증이겠거니, 꺼내보았다. 주머니에서 나온 것은 낡고 오래된 20솜이었다. 사람은 살면서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계시를 받는 때가 있다. 물론 대다수의 경우는 그렇게 계시라고 믿고 싶어하는 사람의 확신이 있을 뿐이지만. 참 별 것 아닌 일이지만 주머니에서 나온 낡고 찢어진 20솜이 나에겐 계시였다. 그래, 오늘은 이 글을 쓰고 일단락을 짓자, 라고 생각했다.


    3.

    사람은 살면서 어떤 장면에서건 마법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일요일 늦은 오후, 합정역에서 엔딩을 본 게임 소프트를 팔고 신도림으로 오는 버스를 탔다. 버스가 양화대교를 건널 무렵부터 라디오에서는 전인권의 '걱정말아요, 그대'가 나지막히 흘러나왔다.



    버스는 고요했고, 전인권의 거친 목소리는 버스의 모든 사람들의 귀청을 긁어내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분명 확신하건데, 버스 기사부터 맨 뒤 승객들까지 모두는 그 노래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여의도와, 하얀 요트가 떠 있는 한강과, 뿌연 미세먼지로 뒤덮였지만 맑은 하늘, 적당한 온도, 비쳐 들어오는 햇빛 사이로 누군가 분명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리가 늘어났다. 그리고 또 소리가 늘었다. 누구도 정확하게 가사를 따라 부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목구멍으로, 입으로 새어나온 흥얼거림이 마치 합창처럼 들렸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마도 그건 노래의 코러스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그 순간의 전인권의 목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놓는 무언가가 있었다.


    4.

    나는 분명 도망쳐왔다. 도망간 곳에서 다시 도망쳐왔으니 도망자도 이런 도망자가 없을 것이다. 후회를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말일 것이고, 분노를 하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거짓말일 것이어서 마음속엔 여전히 후회와 분노가 일정 부분 자리잡아 그렇잖아도 혼탁한 내 마음을 더욱 어지럽히고 있다. 그러나, 그게 뭐 어떤가. 가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떤 순간에 다른 이유로 후회했을 것이고, 다른 이유로 분노했을 것이며, 어쩌면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도망가고 말았을지 모를 일이다. 지금 내가 선 자리는, 나의 지난 선택이 쌓이고 쌓여 다져진 자리이며, 이곳에 선 나 스스로를 부정하고픈 마음은 없다. 지난 2015년의 경험은, 어떤 면에서든 잊지 못할 기억이며, 나라는 총체를 구성할 아주 중요한 일부분이 되었다. 그리하여 코이카의 기록은 (내가 다시 코이카를 지원하여 마음의 남은 빚을 털어버리기 전까지는) 여기에서 끝맺으려 한다.

    아, 물론 나는 속이 좁은 인간이라, 그것이 알고싶다에 제보는 꼭 할 생각이다. 까먹지 않았다.


    5.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노래합시다
    그대 아픈 기억들 모두 그대여
    그대 가슴에 깊이 묻어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떠난 이에게 노래하세요
    후회없이 사랑했노라 말해요

    그대는 너무 힘든 일이 많았죠
    새로움을 잃어버렸죠
    그대 슬픈 얘기들 모두 그대여
    그대 탓으로 훌훌 털어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함께 노래합시다
    후회 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함께 노래 합시다
    후회 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함께 노래합시다
    후회 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함께 노래합시다
    후회 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함께 노래합시다
    후회 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반응형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