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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0, 여기보다 어딘가에.
    코이카 2015. 4. 16.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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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저 평범한 날이다. 커다란 가방 두개를 다 싸고, 아직 전자제품들을 넣을 배낭을 싸지는 못했지만 해외로 2년을 떠나는 것이 그닥 실감나지는 않는, 그런 평범한 날이다. 커다란 두 개의 짐은 2년을 지내기에는 지나치게 적은 듯 하고, 또 어찌 보면 지나치게 많은 듯하여 갈피를 잡을 수 없지만 이젠 미련을 버리기로 한다. 당연히 가져가고 싶은 것들을 모두 담지는 못한다. 몇 번의 소포를 받아야 하겠고, 그럼에도 모자란 것들은 마음을 괴롭히겠지만 어쩌겠는가. 가져가지 못하는 짐보다도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만나지 못한 사람들과 정리하지 못한 인연들이다. 시간은 없는 듯 있는 듯 하여 마음만 급했고, 간신히 손에 닿는 범위의 사람들을 겨우 만났지만 여전히 남겨진 많은 사람들에게 인사조차 전하지 못하고 떠나게 된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으니 다시 미련을 버리기로 한다. 부디 서운해 하지 않기를.

    지금도 문득, 참 웃기지만,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려고 마음먹은 것은 사소하지 않은 이유였겠으나 중간에 많은 사소한 이유들로 선택은 변할 수 있엇으리라 생각한다. 가령 작년에 차를 샀더라면, 코이카 교육원이 영월로 한 기수 빠르게 옮겼더라면, 결혼을 했었더라면, 학교의 일이 좀 더 재미있었다면... 가정은 소용 없는 일이었겠지만 이랬더라면 지금의 내 선택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러한 사소함들이 뭉쳐 묵직한 덩어리가 된 지금은 이젠 돌아갈 수 없는 길에 서 있다. 그 길은 가본 적 없는 길이라서 조금은 두렵기도, 조금은 기대되기도 한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적어도 예전에 내가 걷던 길 보다는 지금 앞에 둔 길이 좀 더 넓은 길이라는 것, 그리고 내 발로 직접 내딛는 길이라는 것. 이제 그 발을 내딛으려 한다.

    1년 전 오늘, 역시 그저 평범했던 날, 수 많은 소중한 생명이 차디찬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 슬픔과 고통은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내 마음도, 아마도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들처럼 여전히 살아남은 죄책감으로 묵직하다. 그 당시 학교 선생님으로서, 그리고 한 명의 대한민국의 못난 어른으로서 그 사건의 충격앞에 고개를 들기 힘든 기분이다. 추모의 마음을 담아 묵직하게 발을 내딛는다. 부디 2년 뒤 돌아올 한국은 작년의, 그리고 지금의 한국보다 조금 더 아름다운 나라이길. 그리고 앞으로의 2년 간의 배움이 나를 키워주는 계기가 될 수 있길.

    잘 다녀 오겠습니다. 모두 건강히, 그리고 무사히 2년 뒤에 밝은 웃음으로 볼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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