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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6. 오르락 내리락 하다 하루해가 집니다.
    코이카 2015. 4. 23.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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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_그냥_우리동네_뒷산이야.jyp

    이런 곳에 살고 있다. 저 눈덮인 설산은 비쉬켁 시내에서 남쪽을 보면 어디에서나 보이는데 굉장히 신비롭달까, 적응이 안된달까. 그냥 차타고 죽 가다가 잠시 고개를 돌리면 저런 산이 눈앞에 있다. 꼭 그림으로 그려놓은 느낌인데, 사실 현실감은 떨어지는 편. 왜냐면 최근의 비쉬켁 날씨는 덥기 때문이다! 오늘만 해도 28도를 넘는 굉장한 날씨였다. 물론 건조한 날씨의 특성 상 그늘은 굉장히 시원하고, 밤에는 추울 정도로 일교차가 크다. 그래서 감기에 걸리기 쉽고, 아무래도 감기에 걸린듯도 싶다. 어쨌든.

    본격적인 현지적응교육(이라 쓰고 그냥 하루 종일 언어교육이라 읽어도 무방하다)이 시작되니 삶이 상당히 단순해졌다. 홈스테이하는 집이 이름도 거창한 학원 런던스쿨에서 꽤 떨어져있어 6시 50분에 기상하여 8시 반에 수업을 시작하고, 수업이 모두 끝나면 4시, 그리고 동료들과 모여서 스터디를 하면 6시정도 되고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수다좀 떨면 지금 글을 쓰는 10시쯤 된다. 아침에 만원 버스에서 엄청난 교통정체를 겪고 있자면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를 자연스럽게 외치게 되는데, 삶의 패턴이 서울에서의 원래 내 삶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즐거워보이는 런던스쿨의 한 때, 물론 수업시간이 저렇게 즐겁지는 않다. 단복을 입고 있는 이유는 이 날이 주한 키르기즈 대사님을 만나 면담하고 식사를 함께 하는 날이였기 때문. 수업은 오전에 문법과 읽기 수업을 4시간 반동안 진행하고, 오후에 회화 수업을 1시간, 그리고 마지막 1시간은 키르기즈 학생들과 1:1 과외 비스무리한 레슨을 받는 것으로 진행된다. 정말로 하드코어한 어학연수가 아닐 수 없다. 강제로 정보를 머리에 쑤셔넣는 기분인지라 전부 소화가 되질 않는다는 것이 큰 문제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러려고 왔는데. 그리고 키르기즈어는 생각보다 한국어와 어순이며, 단어의 활용이며, 음운 특성이며가 비슷하여 나는 나름 국어교사로서의 이점을 누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어는 나름 재밌다.

    어쨌거나 바로 어제, 수업이 끝난 후 주키르기즈 한국대사님을 만나 식사를 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는데, 키르기즈 대사님은 굉장히 따뜻하고 좋은 분이셨다. 환담을 나누고 근처 고급 한국 식당으로 이동하여 환담을 나누며 식사를 하였는데, 한국음식을 그리 필요로 하지 않는 나인데도 음식이 어찌나 맛있던지. 온지 일주일밖에 안됐지만 간만에 먹는 김치찌개와 제육볶음은 정말 맛있더라.

     

     

     여러분, 제육볶음은 사랑입니다. 드세요, 두 번 드세요.

     

    여러분, 김치도 사랑입니다.

    물론 감자는 여기 감자가 훨씬 맛있다. 이번에 간 한국 음식점은 비쉬켁 시내에 유일한 5성 호텔인 골든 드래곤 호텔에 있는 '강남'이라는 키르기즈 비쉬켁 맛집이었는데 (바이럴 마케팅? ㅋㅋ) 농담이 아니고 음식이 정말 맛있었다. 물론 식재료의 차이에서 오는 맛의 차이는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이정도 맛이라면 한국이 그리울 때 한 번 씩 먹을만 한 정도의 느낌?

    늘 이런것만 먹고 사는건 당연히 아니고, 학원에서 주로 사먹게 되는 점심은 주변 쇼핑몰 베파에 있는 터키 음식들이다. 당연히, 배고프고 가난한 봉사자인 나는 음식이 나오면 정신없이 먹어치우기 때문에 있는 사진이라곤 콜라와 터키식 쌀 푸딩밖에는 없지만, 밥과 닭고기 구이가 같이 나오는 음식과 밀 전병으로 둘둘 만 케밥은 정말 맛있다. 300그램짜리 몽둥이만한 케밥이 150솜(약 3000원)이니 가성비는 그야말로 최고. 

     세계 어딜 가도 코카콜라는 있다. 아, 아직 키르기즈에는 맥도날드, kfc 등 글로벌 프렌차이즈 패스트푸드 업체가 없다! 롯데리아가 들어오면 대박칠 수 있을 것 같은데.

    쌀로 만든 푸딩, 달콤하니 맛있다. 대충 이런 생활이 반복되고 있는 중.

    그러나 정작 문제는 이런 물리적인 조건들보다, 늘 그랬던 것처럼 부침을 거듭하는 나의 정신상태다. 오늘 동기 단원 중 한 명이 갑자기 배가 아파서 울다가 병원으로 갔는데, 큰 문제는 아니라고는 하나 그러한 상황 자체가 꽤나 정신적으로 큰 충격이었는지 솔직히 한동안 약간 멍-한 상태였다. 그 여파로 집에 도착하여 빨래를 하려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세제는 있어? 없으면 빨래 어떻게 하려고? 라고 물었을 때, 또 한번 충격을 받았다. 별 것 아닌 이런 사소한 일에도 쇼크를 받을 만큼 흔들거리는 정신상태라니. 한국의 여자친구, 친구들과 대화를 하고, 맛있는 저녁을 먹고 나니 다시 기분이 좋아졌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오는 이런 감정의 오르내림이 최근의 나에게는 가장 힘든 일이 아닌가 싶다.

    코이카를 지원하고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 '왜?'였다. 각오하지 않았던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적어도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 많은 코이카에서는 이런 질문을 받지 않겠구나 했더니 웬걸, 현지 사무소에서도 가장 먼저 들은 질문이 '왜?'였다. '그냥'이라고 대답하면 참 편하고 좋으련만, 그럴 수 없는 처지인지라 이런 저런 대답을 궁색하게 하다보면 진짜 내가 선택한 이 길이 그렇게도 이상한 선택이었는지 스스로에게 다시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 질문으로부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솟아나는 불쾌한 감정들이 시간이 지나 어떤 시점에 문득 치밀어오르면 손쓸 새 없이 마음이 가라앉고 만다. 내가 어울리지도 않는 감사 일기를 쓰기로 한 이유도 이런 감정들로부터 조금이나마 벗어나기 위해서이다. 친구의 말마따나 저런 질문들을 내가 통제할 수는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내 마음가짐과 태도를 결정하는 일일테지. 아예 흔들리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러한 일들에 크게 흔들리지 않고 늘 평정을 유지할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 홈스테이에서 벌써 5일을 지냈다. 생각과는 달리, 나는 나름 잘 적응하고 있는 듯하다. 현재 홈스테이에서 내가 의사소통하는 방법은 영어를 잘 하는 딸내미와는 영어로 수다를 떨고, 영어를 거의 하지 못하는 아주머니, 그리고 아들내미와는 러시아어 + 키르기즈어 + 영어 + 몸짓 발짓 + 구글 번역기를 이용하여 의사소통을 하고 있는데 나름 지낼만 하다. 가족들은 모두 성실하고 좋은 사람들로, 아주머니의 음식솜씨는 정말 좋으신 편. 그리고 직업이 의사이신지라 건강을 생각해 주셔서 나름 건강을 유지하며 지내고 있다. 아, 참고로 키르기즈의 의사는 한국의 의사와는 달리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하는 듯. 아들 역시 의대를 다니고 있는데 외국으로 나가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한 모양이다. 그래서 일단 영어공부부터 하라는 충고 아닌 충고를 해주었다. 키르기즈의 영어 교육열도 한국에 못지 않아서, 시내 곳곳에 영어 학원들이 즐비하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영어를 배우기 위해 애쓰고 있다.

    ++ 동네를 들어오다 보니 유르타가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져 있길래, 대체 이건 왜 여기에 서있나 싶었더니 어제 밤에 누군가 돌아가셨단다. 키르기즈의 전통 장례풍습은 한국과 매우 비슷하여 3일장을 기본으로 하고, 부계혈통을 중심으로 3일간 전통 집에 고인을 모셔두었다가 땅에 매장한다고 한다. 언뜻언뜻 곡소리가 들리고, 상주복 역시 한국과 매우 비슷한 편. 그리고 40일이 지나면 우리나라의 49제처럼 모여서 다시 기원을 하고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한다. 장례 문화가 이렇게 비슷하다니 이 집안 사람들도 놀라는 눈치.

    +++ 오늘 집으로 오는 버스를 타려는데 갑자기 사거리를 경찰들이 굉장한 기세로 통제하더니, 사람들을 건너지도 못하게 하고 엄청 삼엄하게 지키고 서 있었다. 대체 이게 뭐지... 싶어서 조금 기다려보니 잠시 뒤 통제된 거리를 경찰차들과 함께 검은 선팅을 한, 그리고 번호판이 키르기즈 국기 모양인 고급 차량이 쌩 지나가더라. 집에 와서 아주머니께 여쭤보니 대통령이거나 국무총리일거라고. 참 신기한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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