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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10, 문화체험, 문화충돌, 문화접변.
    코이카 2015. 4. 27.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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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르기즈에서 맞는 두 번째 주말이 지나간다. 벌써 두 자리 숫자로 접어들다니 시간이 꽤나 빠르다 싶다. 지금까지 해 온 여행의 패턴에 따르면 슬슬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해야 하는데 집으로 돌아갈 채비는 커녕 아직 본격적인 일은 시작도 안했다는 것이 함정. 여행자일때와 지금의 가장 큰 차이점을 찾자면 역시 그 문화를 체득해야 하는지 아닌지에 차이가 아닐까. 여행자로서 멀리서 그 문화를 지켜보고 그 문화의 단물만 핥고 돌아갔었다면 지금은 좋으나 싫으나 이 문화에 녹아들어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그리고 어제는 문화'체험'의 날이었다. 역사박물관과 수파라라는 키르기즈 전통 음식점을 방문하는 날로, 그래도 나름 기대되는 일정중의 하나였다.

     

     늠름한 마나스 장군의 동상. 뒤에서 얘기하겠지만, 실존 인물이 아니라고 추정되는데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될만큼 중요한 문화적 가치를 지니는 인물이란다. 일리야드의 몇 배나 되는 분량의 마나스 서사시의 주인공으로, 중국의 침략을 몰아낸 키르기즈인의 정신적 영웅. 기회가 되면 한번 꼭 깊이 알고 싶은 내용이랄까.

    멀리 보이는 역사 박물관. 건물은 꽤나 웅장하게 잘 지어져 있고, 구 소련시대의 건축물 답게 앞쪽의 광장도 잘 꾸며져 있는 편. 그러나 사진촬영이 금지된 안쪽의 박물관은 딱히 볼 것도 없고, 관리 상태도 엉망이었다. 기본적으로 유목민 문화를 기반으로 하여서인지 구석기 - 근세로 한방에 뛰어넘는 타임슬립이 나름 충격적. 구소련시대의 건축물로서의 가치는 있는듯하다. 앞쪽의 마나스 동상에는 예전에는 레닌 동상이 서있었다고 하며, 역사박물관 뒤쪽에 레닌 동상이 있다는데 보지는 못했다.

    조금은 아쉬운 역사박물관을 뒤로하고, 조만간 있을 5월 1일 노동절 축제와 연관있는듯한 지역 축제를 구경하러 갔다.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일종의 유기농(?) 환경보호(?) 동네 축제인 듯. 무대도 꽤나 그럴듯하게 꾸며져 있었는데, 여기서 많은 학생으로 보이는듯한 공연팀들이 나름의 장기를 펼쳐보이고 있었다. 학교 축제를 담당하던 나에게는 꽤나 흥미롭게 다가오는 광경들이었다.

     

     

     

     

    화려한 전통춤. 따로 무용팀은 아닌듯하고, 학생들이 모여서 연습한 느낌이다. 신나고 화려한 느낌의 춤이었는데, 저 옷에 저 모자 쓰고 하려면 굉장히 더웠을듯.

     

     전통악기. 기타 소리랑 비슷한데 현이 적어서 낼 수 있는 소리는 적은 편. MR을 틀고 하는 느낌이었지만 이국적이다.

     그리고 주변의 장터에서 한 컷. 마네킹같지만 사람이다. 대체 30도 가까이 되는 이 폭염에서 무슨 학대란 말인가. 그렇지만 나는 사진을 찍는다.

     

     

     멋지긴 한데 땀띠는 확정...

    굉장히 화려한 색감의 그림들. 그리고 지역색을 가진 다양한 장터와 볼거리들이 있는 꽤나 실속있는 축제였지 싶다.

    이렇게 가볍게 볼거리를 보고 전통음식점 수파라로 이동. 수파라는 전통음식점이라고 표현하기에는 규모가 꽤 큰, 일종의 키르기즈 전통 체험 테마 음식점 같은 곳으로, 키르기즈 전통 음식을 비롯하여 전통 체험을 꽤나 비싼 가격에 체험할 수 있는 곳이었다.

     

     여기가 수파라. 약간 에버랜드의 놀이기구 같은 느낌.

     

     신록은 참 예쁘지만 날씨는 거의 우리나라의 한여름. 그래도 습도가 낮아서 그늘은 시원하다.

     유르타를 본떠 놓은 양철 건물. 꼭대기의 저 문양이 유르타의 채광창으로, 키르기즈 국기에 형상화되어 있다.

     우리를 안내해준 아저씨와 한 컷. 저 자리는 왕이고, 양쪽 자리는 신하 장군이라는데 진짜 저 사람은 왕 해도 될 것 같은 상이다. 내 친구 조뚱이랑 상당히 닮았고, 성격도 비슷한 듯 싶다.

     왕님과 양 옆의 그 부인들. 뭔가 남자랑 찍을 때랑 표정이 다른데.

     그리고 음식들. 이상하게 어딜 가나 피자를 판다. 맛은 우리 나라 피자랑 흡사하다. 이탈리아 피자보다는 한국식 피자에 가까운, 토핑을 많이 얹은 피자의 느낌.

     무려 말고기 샐러드! 맛있더라. 솔직히 소고기랑 구분하라면 못하겠다.

     이게 아마도 쇼르뽀. 귀한 손님이 올 때 양을 잡아서 그 국물에 양념을 풀어 대접하는 고기 찜 같은 느낌. 양고기가 맛있다. 그리고 감자가 상당히 맛있는데, 확실히 익스트림한 환경에서 감자는 더욱 맛있어지는듯. 홋카이도의 감자가 생각난다.

    베쉬바르막. 고기 삶은 국물에 국수를 넣고 다진 고기를 끓여 먹는 귀한 국수. 맛있지만 기름지다.

    보면 알겠지만 음식들이 전부 밀가루 + 설탕 + 고기(기름)의 맛을 보증하는 3박자를 고루 갖추고 있어 입에는 무척 잘 맞는다. 그리고 키르기즈의 주식은 사실 거의 고기에 가깝고, 우리가 삼겹살 배터지게 먹고 밥을 먹어야 식사를 끝내는 것처럼 여기는 곡물을 아무리 배불리 먹어도 고기를 먹지 않으면 식사가 끝난 느낌이 아니라고들 한다. 그러니 살이 안찔수가 없는 상황. 그나마 홈스테이 집에서는 건강식을 주로 주니 다행이지만, 봉사 끝나고 나면 100kg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리고 나오면서 본 결혼식 피로연 풍경. 지금 바닥에서 뭔가 하는건 무려 드론캠이다. 들어보니 여기 결혼식 피로연은 하루를 꼬박 써서 하는데, 경쟁적으로 큰 피로연을 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져 크게 하면 하루 피로연하는데 한화로 약 1000만원대의 돈을 써버리기도 한다는 듯. 그야말로 빚내서 결혼하는 풍속이 남아있는 것. 이 사진을 찍고 드론캠이 고장났는지 수리하러 잠시 지연됐는데 남자들은 전부 아주 두꺼운 모직 양복을 입고 와서 그늘로 숨느라 난리고, 여자들도 타는게 걱정되어 난리고 그야말로 아비규환. 우리나라의 결혼 문화도 그다지 긍정적이지는 않다고 보지만 적어도 땡볕에서 고문을 하지는 않으니 차라리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여튼 이렇게 문화체험은 끝. 꽤나 흥미로웠지만, 정말 문화'체험'이었고, 고등학교 사회 문화시간에 지겹게 배우는 문화 충돌, 문화 접변 현상은 홈스테이 집에서 매일 일어나고 있다. 최근 일어난 몇 가지 예를 들면 1. 샤워는 물을 최대한 적게 튀기며 (그래서 요즘은 거의 욕조에 웅크리고 샤워를 하는데, 샤워를 할 때마다 뭔가 중요한 인간적인 가치를 잃어버리는 기분이 든다.) 2. 샤워 한 후에는 세제로 욕조를 닦아야 하고 (이건 이 집만의 특징인지도) 3. 화장실 휴지는 휴지통에 (우리나라의 추세와는 반대다.) 등등... 의외로 사소한 문제에서 점차 고쳐나가야 하는 것들이 많아지고 있다. 생각해보면 결국 문화의 차이라는 것이 사소한 부분에서 크게 드러나는 법이고, 그런 것들을 맞춰가는 것이 문화 적응이겠지만 또 그 문화 충돌과 문화 접변의 사이에서 그라인딩되는 나의 물렁물렁한 멘탈은 좀 더 적응기간을 길게 가졌으면 하는 것이 사실. 이러나저러나 결국 2년을 살아야 하긴 하겠지만.

    + 글을 쓰고있는 지금도 비가 무척이나 많이 온다. 나는 비가 오는 것을 싫어하는데다, 오늘 우산을 챙겨오지 못해 비를 좀 맞았고, 창 밖에 달아놓은 양철판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상당히 거슬려 무척이나 우울한 밤이다. 아마도 고등학교-대학교로 넘어온 이후 이렇게 순수하게 울적한 감정에 젖는 것도 처음인 듯. 더군다나 이방인으로 멘탈이 바스라지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 이런 비는 조금 힘들다. 울적한 마음은 그저 캔디크러시로 달랠 뿐.

    ++ 홈스테이 가족 사람들은 물론 좋지만, 점차 적응되어감에 따라 내가 해야 하는 집안일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샤워 하고 욕조 청소하기라든지, 오늘부터는 방 청소도 내 스스로 해야 되는 모양. 내가 사는 장소를 내가 치우는 것은 뭐, 그렇다 치더라도 어차피 이럴거면 마음이라도 편하게 홈스테이 말고 그냥 합숙을 하는 건 어떠했을지. 물론 장단점이 있고 이미 지나서 돌이키기 힘든 상황이겠으나, 여전히 생각해보면 입맛이 썩 달콤하지는 않다. 남의 집에 얹혀 사는 것이 이리도 불편한 일일 줄이야. 나는 좀 더 연착륙을 원했나보다.

    +++ 그래도 나는 나름 잘 살아남고 있다. 어제 찾아본 어떤 블로그에서는 정말 아무런 대책 없이 중앙아시아로 와서 신나게 여행을 즐기고 간 어떤 젊은이의 블로그를 보았다. 딱히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부러운 점은 분명 있다. 마음을 여유롭게, 굳게 먹자. 나는 잘 하고 있고,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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