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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14, 홈스테이를 옮기다.
    코이카 2015. 5. 1.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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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는 참 괴로운 하루였다. 전날 밤과 마찬가지로 아침에도 냉랭한 분위기가 지속되는 한편, 아주머니는 아침 일찍 어디론가 나갔기 때문. 아주머니와 마주치기 불편하여 아주머니가 나가시길 기다렸다가 씻으러 나오는데 딸내미가 '샤워 하지 마, 너 샤워하면 나랑 내 동생이랑 직장이랑 학교에 늦어'라고 한번 더 얘기하기까지 했다. 어차피 씻을 생각 없었다고. 대충 면도와 고양이 세수만 하고 나오니 당연히 기분은 구질구질 할 수 밖에.

    아침에 수업은 듣는둥 마는둥 하고 있으니 아주머니가 런던스쿨에 오고, 이어 과장님과 코이카 현지 직원분이 나오셔서 무언가 이야기를 하는 듯 했다. 그 구구절절한 사연은 뒤로하고 간단하게 사실만 정리하면,

    1. 돈을 늦게 지급하는 것과 아침 저녁 식사 포함, 일주일에 한 번 청소, 설거지는 안해도 된다는건 계약사항에 이미 적혀있던 것이었다. 자이카도 런던스쿨을 통해서 홈스테이를 주로 구했는데, 자이카라고 돈이 다르게 책정된 것은 당연히 아니었던 듯. 심지어 이 어학원에서는 그 집에 자이카 대원을 배정한 적조차 없단다. 아마도 그 집에서 따로 추가 계약을 한 것을 기억하고 있던 모양. 물론, 중간에 껴서 수수료를 떼는 분량이 분명 많기는 하다. 아줌마 말로는 7달러가 들어온다는데 코이카 사무실에서는 그의 약 2배 좀 못되는 돈을 지급하고 있다고. 이건 좀 문제는 문제다.

    2. 가장 큰 문제는 이 런던스쿨에서 의사전달을 정말 '엉망진창'급으로 했다는 것. 그저 단순히 '청소를 제가 해야 하나요?'라고 물은 것이 전달되고 나니 왜이렇게 집이 더럽냐, 청소 안해주냐, 침대 커버 안갈아주냐로 변해있었고, 심지어 다른 단원은 정말 별로 불평을 표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집에서 살기 힘들다는 식으로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흔히 겪었던 갑질인 것. 사실 앞에도 좀 써놨지만, 나는 홈스테이에 그다지 큰 불만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골룸처럼 씻는거, 청소기 돌리는 거, 설거지 하는 거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시키는 대로 다 했던것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의 한도에 있는 일이었기 때문인데, 말을 저딴식으로 전해 놓으니 당연히 문제가 생길 수 밖에. 물론 관리업체의 입장에서는 강하게 나가는 것이 편하니까 그렇게 하겠지만, 사실 집주인의 입장에서 기분이 나쁘다는건 거기에 얹혀 살고있는 홈스테이 학생의 입장에서도 굉장히 조심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중간 점검은 모두 없는 일로 하고, 홈스테이가 끝났을 때 평가하는 것으로 제도를 바꾼다고 한다.

    3. 런던스쿨 입장에서도 샤워를 오래 한다는 항의는 황당했던지 새로운 홈스테이를 구하고 있던 터라 바로 당일인 어제 옮길 수 있었다. 그리고 더욱 더 다행이도 같은 동기가 살고 있는 홈스테이로 옮길 수 있게 되었다. 짐을 챙기러 원래의 홈스테이 집으로 들어가는 길, 당연히 발걸음과 마음은 무거울 수 밖에 없었다. 듣자하니 런던스쿨에서 전화를 받고 그제 엄마는 한참 울었다고. 아들처럼 생각하고, 아이들도 좋아했는데 이렇게 되어서 너무 미안하고 슬프다고. 나는 오죽하겠는가. 그야말로 연고 하나 없는 동네에서 힘든 처음 10일간을 어쨌거나 정붙이고 살았고, 아주머니가 해주시는 음식들이 나를 잘 적응하게 해주려고 일부러 만들어주는 음식이라는 것을 알았고, 자식들도 내가 있어서 꽤나 불편했을텐데 나라고 마음이 편했겠는가. 죄송하다고,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나왔다. 마음은 시원한 한편 착찹했다. 이래서 현지어를 잘 하라고 하는거구나.

    어쨌거나 울적한 기분은 집어치우고, 짐을 옮겨 새로운 홈스테이 집으로 들어왔다. 그 방을 공개.

     

     

     

     

     

    뭘 더 바라겠는가. 그리고 주인 내외분도 아주 푸근하고 친절하고 유쾌하신 분들이라, 나 역시도 지난번 집보다 더 조심해서 살 예정이므로 큰 문제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오늘 살아본 바에 따르면 아침에 교통체증 없이 슬슬 걸어서 학원을 오갈 수 있음, 샤워를 골룸처럼 안해도 됨, 이불이 두꺼워서 깔깔이를 입고 자지 않아도 됨, 이 3박자만으로도 인간의 존엄성이 회복되는 느낌이랄까. 최대한 쥐죽은듯 아무 문제 없이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부디 내쫓지만 마세요.

    + 새로운 집으로 돌아와 전 집 딸내미에게 미안하다, 내 의도는 아니었지만 너희 가족에게 상처를 주었다, 너희 가족과 있었던 시간은 참 행복했다, 혹시라도 한국에 들어오게 된다면 연락해라, 라고 장문의 SMS를 보냈다. 답장이 안 올 줄 알았는데 괜찮다며, 나도 미안했다고, 혹시라도 비쉬켁에서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라는 답문이 왔다. 지금의 집으로 옮긴 것이 확실히 더 좋긴 하지만 지난번 집 역시도 나에겐 나쁘지 않았고, 이런 불미스러운 일을 통해 나가게 된 것은 더더욱이나 슬픈 일이다. 아줌마가 한국 제품을 참 좋아했는데...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한국 간장 한 번 골라주고 올 걸 그랬나보다.

    ++ 오늘 밤에는 새로운 집 딸내미와 아빠와 동기단원과 밤 산책을 나섰다! 세상에, 밤에 슬슬 걸어서 싸돌아다니기 좋아하는 나에게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제안. 키르기즈는 가로등이 많이 없어서 상당히 어두운 편인데, 길이 울퉁불퉁해서 좀 걷기 어려운 점만 제외하면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그보다 저렇게 큰 딸(고등학생으로 알고 있는데)이 아버지랑 나란히 걸으면서 오손도손 얘기할 수 있다는게 놀랍군. 참 화목한 가정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나도 나중에 딸 낳으면 저렇게 할 수 있을랑가?

    +++ 웃픈 얘기. 어제 샤워하는데 서서 샤워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부려서 샤워하는 나를 발견... 이 무슨 스스로 익스페리먼트 영화를 찍고 있는 꼴이란 말인가. 나 나름대로는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심리적으로는 확실히 큰 부담이긴 했었나보다. 앞으로 누구도 구박하지 말아야지... 나 스스로가 겪어 보고 나서야 느끼게 된다.

    ++++ 내일부터 연휴! 라지만 뭐 내가 여기서 뭔 부귀영화를 누리겠는가. 1:1로 대화하는 현지인 대학생들은 이식쿨로 놀러간다느니, 어디 번지점프를 하러 간다느니 하지만 나는 그냥 있어야 되는 상황. 그래도 동기 단원들이랑 어벤저스2를 보러가기로 했다. 영어로 보겠지만 러시아어보다는 낫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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