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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38, 안정과 불안, 적응과 권태 사이.
    코이카 2015. 5. 24.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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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사진 없이 글만. 주말인 오늘은 좀 나은 편이지만 지난 주는 좀 괴로웠다. 벌써 어학원-홈스테이만 왕복한지 6주째. 그야말로 안정과 불안, 적응과 권태 사이에서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한 주로 기억한다. 특별한 일은 없었다. 그저 정신적으로 괴로울 뿐이라면 뿐이랄까.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어학원을 가고, 어학원이 끝나면 복습을 하고, 복습을 하고 집에 와서 또 공부를 하고, 금요일에는 시험을 치고. 물론 사이사이에 대사관에서 개최한 한국 영화제에도 참석하고 여러모로 재미가 없던 것은 아니었으나 그런 소소한 이벤트로 삶의 괴로움이 녹아들기에는 부족했던 모양. ('고지전'을 다시 봤고, '소중한 날의 꿈'을 보았는데 두 편 모두 만족스럽긴 했다.) 한 일주일 깊이 잠도 못자고 피로에 찌들고 날카로워진 한 주를 보냈다.

    그럼 대체 왜 나는 만족하지 못하는가. 지난 포스팅에 이어 나는 고민하는 중이다. 지금의 삶이 힘든가? 딱히 그렇지는 않다. 잠을 시간상으로나마 충분히 자고, 나름 평화로운 속에서 잘 먹고 건강에도 딱히 문제는 없다. 체력적으로 무리가 되는 일도 없고, 운동을 좀 못한다는 것 제외하고는 힘든 삶이 아니다. 이 곳에 타의로 쫓겨 왔나? 당연히 아니다. 자의로 여기에 오기 위해서 포기한 것들, 보류한 것들 모두 내 손으로 어느 정도는 마무리를 짓고 왔고, 여기까지 온 것은 분명히 나의 선택이었다. 그러면 행복한가? 이 점에 대해서는 딱히 긍정적으로 대답하기 힘들다. 분명히 지금의 내 삶은 불만족스럽다. 그것은 비단 홈스테이, 어학원 생활 등의 외적 요인 뿐만 아니라 생활 전반의 어떤 마음상태에서 기인하는 듯 하다. 가장 큰 이유는 무언가 내가 목표로 하는 것이 실현되지 않고 있다는, 아니 애초에 내가 목표하던 것이 무언지 모르겠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처음에 코이카를 지원하면서 내가 바랐던 것은 내 좁은 시야가 넓어지고, 외국에서의 생활을 통해 내 경험의 폭을 넓히며, 그 가운데서 봉사도 실천하는 그런 긍정적인 것들이었다. 국내교육을 겪으면서는, 전반적으로 그 생활에 만족하는 가운데 내가 해야 되는 일, 지금 내가 나아가려고 하는 일의 비전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인식하고 동감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가졌다. 그런데 막상 현지적응교육에 오니 무언가 봉사나 내가 해야 되는 직무가 중심이 아닌 그저 어학원에서 죽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는 것이다. 더하여 키르기즈는 전혀 외국에서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것도 작지만 큰 요인중의 하나. 물론, 현지어의 습득이 우리가 직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처럼 언어에만 온전히 집중하는 여러가지 면에서 딱히 긍정적이지는 않다. 일단 아침 8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한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인간의 학습능력의 한계를 이미 넘었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와중에 내가 여기에 왜 왔는지에 대한 목적의식이 희미해지고, 그 가운데 권태와 불안이 자라나고 있었다고, 스스로는 생각해본다.

    결국에는 내 약한 정신의 탓이겠으나 이런 여러 생각이 겹쳐져 맘이 편치 않았다. 다른 단원과 이야기를 해 보니 '러시아어'를 배우는 것이 아닌 '키르기즈어'를 배우는 것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고는 있는 모양. 이 점에는 나도 동감한다. 2년 러시아어를 배워서 러시아어 자격증을 따겠다는 것도 목표였는데, 그보다 훨씬 쓰임이 덜한 키르기즈어를 2년 동안 배워야 하다니... 뭐, 이미 정해진 일에 토를 달아봐야 머리가 아픈건 나니까 그만 생각하는 것이 낫겠다.

    이제 내일부터 일주일간 탈라스로 OJT를 떠난다. 가서도 홈스테이라는 것이 정말 짜증이 막 나지만! 그래도 이번 OJT를 통해서 내가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어떤 일들을 할 수 있고, 어떤 일들을 해야 하는지, 내게 주어진 임무는 무엇이고, 내가 그것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지 보다 현실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시기가 됐으면 한다. 어쨌거나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는 그 곳에 던져졌으니 어떻게 떠내려갈지는 결국에는 내가 정해야 될 몫.

    + 스승의 날 답문은 아무래도 좀 늦어질 듯 싶다. 그래도 대충 쓰고 싶지는 않아서 바로 쓰지 않는 것이니 이 블로그를 보는 누군가는 애들에게 전해 줄 것!

    ++ 결국에는 사람의 문제라는 것을 또 다시 깨닫는 건, 하... 여러가지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국내 교육에서 같은 방을 썼던 모 형님께서 나에 대한 평가로 '상식적인 선만 유지해주면 별 문제 없을 사람'이라고 평가를 했다는데 나는 이 평가에 아주 동감한다. 물론 그 상식적인 선은 내 기준이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선을 낮춰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관계가 없으면 어차피 나도 신경을 안쓰겠지만 왜 이렇게 주위에 눈에 띈단 말인가. 마음 속으로 불경이라도 외우면서 참아야 하나.

    +++ 한국에서 보낸 짐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이번 주에 받을 수 있길 바랐는데. 갔다 오면 와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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