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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52, 各自圖生코이카 2015. 6. 8. 02:25반응형
마음이 소란스럽다. 지난 2주는 부침을 거듭하다 그저 가라앉고 만, 내가 여기에 왜 있는지를 끊임없이 되묻게 만드는 기간이었다. 문제는 단순하지만 심각하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지난 2주를 통해 내가 탈라스에서의 내 봉사활동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명확한 정규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종류의 불확실성이 사람을 얼마나 피말리게 하는지를 몸소, 2주 째 되새기고 또 되새기는 중이다.
애초에 어느 정도 불안하긴 했다. 초등학교~고등학교까지를 모아놓은 학교로 배정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분명 이 나라에도 교육과정이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규정 시수가 있을 것인데 어떻게 한국어 교사가 활동할 수 있다는 건지 의문이 들었었다. 그래도 그 때는 아직 코이카라는 단체에 대한 믿음이 있던 시기이고, 이미 학교를 그만 두고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가면 일이 있으리라고 낙관적으로 생각했었다. 그 기대는 2주 전 OJT를 가기 전까지 이어졌고, 불안정한 현지 교육 상황이었으나 일을 시작하면 괜찮아지리라는 희망 하나로 나름은 즐겁게 생활해 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기대가 OJT 첫 날, 기관에 방문하여 교장과 마주 앉은 첫 날 바로 깨지고 말았다. 어느 정도 상황이었는고 하니
1. 한국어 교사가 파견되는지를 교장은 모르고 있었다.
2. 한국어 수업을 정규 수업에 넣어줄 수 있느냐고 하니 당연하게 NO.
3. 컴퓨터 교사가 오는 것이 아니냐고 묻더니, 그럼 컴퓨터 수업에 꼽사리 껴서 한국어를 가르치란다.
4. 어쨌거나 정규 수업은 안되고, 할라면 방과 후 수업이나 하라는 식.
나는 가만히 들으면서, 아니 이게 대체 말인지 방구인지, 대체 이 상황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며, 누가 책임지는지 궁금했다. 그 와중에 같이 온 사무실 관리요원분은 '아 옮기는 방법도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라며 말했다. 이전에 홈스테이를 옮길 때도 그랬지만, 그 옮긴다는게 말은 참 쉽지만 그동안 준비해 온 것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수준의 변화라서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어쨌거나 멘탈이 무너졌고, 기관에서도 여지없이 홈스테이를 했는데, 아... 이 홈스테이는 또 뭐란 말인가. 일단 집에 씻는 곳이라고는 부엌에 딸린 작은 세면대 하나, 그리고 화장실은 집 뒤편 밭 한가운데에 있는 푸세식. 당연히 거기에 있던 6일 동안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물티슈로 적당히 몸을 닦으며, 간신히 쪼그려 앉아서 일을 보는 생활을 이어갔지만, 사실 일이 없다는 정신적 충격에 비하면 그런 것들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기관을 옮길 수 있다는 희망은 있었으니까, 그리고 옮기는 걸 기정사실화 해서 대충 시간을 때우기는 싫었으니까 나름은 열심히 기관 조사도 하고, 수요 조사도 하고 했었다. 다행이도 아이들은 참 예뻐서, 9월부터 방과 후 수업을 한다고 수요 조사를 하러 다니니까 몇 번이고 찾아와서 정말 9월에는 한국어 수업을 하냐고,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이것도 마음의 짐이었다. 왜냐면 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지금 내가 하는 일이 그저 조사로 끝난다면 저 아이들이 가지는 기대감을 모조리 무너뜨리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걱정은 그저 기우였지만, 그래도 가서 지낸 시간이 내내 가시방석 같았다.
어쨌거나 OJT가 끝나고 수도로 와서, 주말동안 무너진 정신을 부여잡고 보고서를 쓰고, 월요일에는 무언가 얘기를 들을 수 있겠거니 하며 희망을 부여잡고 간 사무실. 가서 있던 일들을 이야기했고, 정규직이 아니고 시간이 남는다, 이럴려고 여기 온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최대한 담담하게 했다. 당연히 희망같은건 개나 주라지, 결론은 참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대다수의 봉사 단원이 많은 일을 맡을 수 없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남아. 여기 수도에 있는 대학교에 수업 나가는 애들도 시간 많이 남아. 그 시간 남는걸 잘 관리하는게 좋은 봉사단원이야.' 네? 뭐라구요? 남는 시간을 활용하는건 봉사단원의 역량에 달린 일이 맞고, 당연히 봉사단원에게 엄청난 일을 주지는 않을테니 시간이 남아 도는 것도 맞을 것인데, 그렇다고 아직 확정조차 되지 않은 임시 수업을 맡아서 하라는게 맞는가 싶어 그 이후에 이메일을 보내 내 생각을 썼다. 시간 많이 남으면 그 시간은 내가 알아서 보람차게 만들거니까, 그런거 걱정하지 말고, 시간은 많아도 적어도 좋으니 그냥 정규로 할 수 있는 일을 달라고, 썼고, 기다렸다.
그리고 금요일, 하하... 그래도 아무 것도 안해보고 기관을 옮기는건 좀 그러하니까, 가서 하는데까지 해보고 안되면 옮깁시다. 내가 관리요원이라도 이런 말을 할 것 같다. 이건 너무나도 정석적인 대답이고, 알다시피 제대로 된 정석에는 어떤 수를 써도 얕은 수작처럼 보일 뿐이다. 반박할 수가 없었다. 아, 음,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가서 열심히 해봐야죠...
아 물론, 정말로 가서 잘 될 가능성이 0은 아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방과후 수업을 빡시게 하고, 남는 오전과 오후 시간에는 지역사회에서 할 일을 '내가 찾아서' 열심히 하면 보람있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참 코이카 단원의 모범과도 같은 일이겠지.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드는거다. 위에서도 얘기했던 것처럼 나는 일이 있다고 해서 여기에 파견됐고, 그럼 적어도 고정된, 확실한 하나의 일 정도는 있어야 정상적인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일을 확보해놔야 했던 것이 사무소와 사무소 인원들이 해야 했을 일이 아닐까? 내가 내 돈 내고 온 것이 아니라 여기서 먹고 생활하는 것들이 모두 세금이라면 그 때문에라도 좀 더 명확하고 나를 필요로하는 곳에서 일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결국, 나는, 여기에, 왜, 온걸까?
가서 잘 될 가능성은 꼭 슈뢰딩거의 고양이같다. 박스에 독이 든 먹이를 넣고 고양이를 넣은 후 그 박스를 닫으면, 그 고양이는 살아있지도 죽어있지도 않은 상태가 된단다. 지금의 내 상태가 꼭 그렇잖은가. 기관에 확실히 성립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일을 두고 봉사단원을 보낸 뒤 두면 그 봉사단원은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도, 망치지도 않은 상태가 된다. 그리고 난 이런 빌어먹을 불확실성이 너무나도 괴롭다.
그래서 결국 근원적인 질문은 하나로 수렴된다. 나는 여기에 왜 왔는가. 그리고 이 질문을 2년간 계속 하게 될테니 이쯤에서 한 번 정리해둘 필요가 있어 보인다.
1. 그저 한국에서의 생활을 떠나고 싶었다. - 달성도 : △, 떠나왔지만 지금의 이 상황은...
2. 어차피 떠날 바에는 내가 가진 능력을 통해 좀 더 좋은 일을 하고 싶었다 - 달성도 : X, 고작 방과후 수업 60명을 가르칠 각오로 온 것은 아니었다.
3. 앞으로도 그저 흘러갈 내 삶의 궤도를 바꾸고 싶었다. - 달성도 : ○, 궤도는 어쨌거나 크게 바뀐게 아닌가 싶다. 그게 탈선이든, 궤도 변경이든.
4.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 달성도 : ○, 살기는 하고 있다.
5. 코이카 경험을 통해 더 좋은 사람으로, 더 큰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었다. - 달성도 : ?, 지금 상황에서는 요원해 보이지만.
이런 생각들을 되풀이하다보면 내가 버리고 온 귀한 것들이 되려 내 목을 졸라온다. 이럴려고 여기 온게 아닌데, 이런 줄 알았다면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봤을텐데 하는 생각들이 머리 한 구석에 들러붙어 끊임없이 나를 비웃는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 노력해 보지만 대체 어디에 긍정적인 면이 있단 말인가? 차라리 아예 푹 쉬다 갈 생각으로 왔더라면 지금 상황이 달가울 수 있겠으나, 나는 그럴 생각으로 여기 온 것이 아니다. 좀 더 자율적으로 일을 찾아보라고? 방임과 자유가 같나? 그럴라면 내가 굳이 코이카를 통해서 왔을 필요가 없잖아? 세금 펑펑 쓰면서 지낼 필요가 없잖아?
어쨌거나 시간은 흐르고 있고, 다음 주 목요일에는 정말 비쉬켁을 떠나 탈라스로 떠난다. 그리고 9월까지 약 두달 반의 긴~ 방학을 지내게 되겠지. 이 일정도 참 이상하기 짝이 없지만 그러려니 하자. 머리가 지끈거리는 가운데 목표를 수정하기로 한다. 관리요원의 말마따나 시도도 안 해보고 뭔가 포기해버리는건 껄쩍지근하다. 1년, 최대한 할 수 있는 것을 해보고 안되면 그 후에 기관을 바꾸든, 귀국을 하든 하는 것으로 생각을 바꾼다. 이럴 때 쓰라고 짤방에 적절한 대사가 있다. '이상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야.' 그리고 요즘 한국에 유행하는 말처럼, 그야말로 '各自圖生'의 삶이다.
+ 그 내부에 들어와보니 잘 보인다고, 결국 내가 속한 이 단체도 크게 봐서 '공무원'이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 고작 두 달도 안되어 귀국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으나, 이 부분에서 난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고 싶다. 당연히 힘들거라는 생각을 했고, 그러한 것에 대한 대비를 안한 것은 아니었으나 '확정된 일이 없어'라는 가능성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여기서 허송세월할 바에는 한국에 가서 뒹구는게 여러모로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자꾸만 든다.
+++ 그 와중에 주변에 이상한 사람들이 참 많다. 조직의 구성원을 보고 그 조직의 특성을 짐작할 수 있다면...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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