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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25, 주말, 또 주말
    코이카 2015. 5. 11.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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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평일에는 딱히 쓸 일이 없다. 자잘한 문제들, 생활의 변화들은 늘 있지만 그건 예상 가능한 범위 안이고 포스팅할 거리들은 특별하게 생기지를 않는 것이다. 오전부터 오후까지 모두 어학원, 그리고 저녁에 카페에 들려 잠시 복습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저녁을 먹고, 씻고, 조금 쉬다 보면 어느 새 하루가 끝나 있는 평일. 조금은 느슨해지고 조금은 지루해진다. 애초에 이런 생활로는 외국에 와 있다는 실감을 느낄 수가 없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 와서 가장 많이 본 풍경은? 아마도 비쉬켁 시내에 있는 어학원 런던스쿨의 내부일 것이다. 아아, 어딜 가나 우리는 일정한 루틴을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인가.

    그나마 주말이 조금은 여유롭고 자유 시간이 있는 편이라 이것저것 찾아보는 편이고, 5월은 한국도 그랫지만 이 곳에도 연휴가 많다. 이번 주말도 연휴인데, 구 소련 국가에서는 굉장히 큰 휴일로 치는 2차 대전 승전기념일이 끼어 있는 연휴였다. 올해는 2차 대전 종전 70주년 기념일이라 러시아는 엄청나게 큰, 그리고 키르기즈에서도 꽤 큰 행사를 기획했다고 하는데, 우리는 이 날 문화 체험을 하러 비쉬켁 근교의 토크목으로 향했다.

    토크목은 옛날 돌궐의 왕이 자리잡았던 곳으로, 중국에서 뻗어나온 실크로드 천산북로의 관문같은 곳이란다. 산맥 사이의 계곡이 점차 넓어져 넓은 분지를 형성하는 그 입구에 자리잡은 곳이며, 돌궐 왕이 여기에 첨탑을 지어서 오가는 사람들을 감시했던 곳이라고. 지금은 과거에는 약 50M로 추정되는, 현재는 반토막나 25미터밖에 되지 않는 탑만이 남아있다고 한다. 비쉬켁에서 토크목까지는 약 1시간 30분 쯤 걸리며, 그 길이 현재 중국이 추진하는 신실크로드와 관련된, 그리고 과거 실크로드부터 연결되어오는 유서 깊은 길이라 한다.

     유적지 입구를 지키고 있는 일종의 장승. 비석의 역할을 했다고도 하며, 우리나라의 돌하르방과 좀 닮았다.

     그날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비가 엄청나게 쏟아졌는데 열성적으로 가자투어 사장님. 덕분에 좀 썰렁할 수 있었던 투어가 의미있었다고 할 수 있다.

     가다가 발견한 팻말. 왜 찍었냐 하면, 내용이 싸우지 마세요! 싸우면 벌금 500솜! 이란다. 많이 싸우나?

     이게 오늘의 유적지 부라나 탑.

     그렇다. 부라나 탑.

    그렇다니까? 부라나 탑. 사람이 올라갈 수 있는데 정말 좁고 어둡고 무서운 계단을 올라가야 해서 나는 포기. 꼭대기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동기들이 보인다. 그리고 이게 끝이다. 농담이 아니고 정말 덜렁 이 탑 하나 있다. 사방은 평야고, 아무 것도 없다. 비는 추적추적 오고... 여기서부터는 위에 올라간 동기님의 사진.

     바로 이런 좁은 계단을 통해 올라와야 했던 것. 아우... 난 시작지점에서 포기했다. 좁고 어두운 곳은 싫다.

     나는 밑에서 본 소풍 온 듯한 어린애들 사진. 사진에서는 잘 안나타났지만 볼이 발갛다. 해맑은 웃음.

    역시나 단체 여행을 온 듯한 사람들. 표정이 어쩜 이리 밝고 예쁠까. 이슬람 국가이지만 이렇게 둘둘 감고 있는 모습을 보는건 흔치 않은 일이다.

     그래도 키르기즈에 온 뒤로 처음 보는 듯한 이국적인 풍경. 넓은 평야에 군데군데 개양귀비꽃이 새빨갛게 피어 있고, 비가 내리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주변지역의 장승들 (비석들)을 모아다 세워놓은 장소가 있다. 우리나라의 무덤에 세워놓는 비석들이랑 비슷하게 모습을 통해 계급까지 추측할 수 있다고 하는데 보존 상태가 엉망이라... 이슬람이 들어온 후로 우상숭배 금지령을 통해 많이 남아있지는 않고, 여기에 모아놓은 것이라 한다. 하르방이랑 꽤 닮았는데.

     키르기즈어는 현재 러시아어와 흡사한 키릴문자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아주 옛날에는 라틴 문자를, 이슬람이 전파된 다음에는 아랍 문자를, 그리고 그 이후에 소련에 편입되면서 키릴문자를 사용했다고 하는데, 여기 있는 비석은 아랍 문자를 사용하던 당시의 글자가 남아있다.

    이 언덕은 어떤 왕의 무덤이었다고 하는데 유물들은 러시아로 다 가져갔다고. 이 이후로 비가 정말 엄청나게 와서 이 조그만한 언덕을 내려오는데 온갖 고생을 다 하고, 바지도 쫄딱 젖고... 하. 그리고 우리는 점심식사를 하러 '가와이'(키르기즈어로 하와이)라는 식당으로 향했다.

    찍은 사진은 이것뿐... 이지만 인공 호수를 만들어놓고 그 위에 지은 식당인지라 여름에는 참 인기가 좋다고 한다. 음식도 싸고 맛있는 편.

    그리고 다음 날, 동기들끼리 대통령궁 뒤에 있다는 놀이공원 '판필로바 공원'으로 향했다.

     정말 놀이공원이다! 규모가 커야 하는 롤러코스터류는 없지만 자잘한 류는 꽤 있다. 이건 한국의 자이로스윙과 비슷한 놀이기구. 탈 때마다 현장에서 50솜(우리나라돈 1000원씩)을 내는데,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많이 기다리지 않아서 좋다. 규모가 작은 만큼 재미는 그냥저냥하고 안전은... 음...

     아직 멀쩡할 때의 한 컷. 놀이기구를 못 타는 사람은 놀이기구에 태우지 맙시다.

     심지어 관람차도 있다. 무서운 것은 저 관람차 하나하나 모두 완전 풀오픈형이라는 것.

     이건... 알 수 없는 놀이기구 위에서 한 컷. 재미는 없었다.

    다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오바마라는 펍에 들려서 가벼운 간식. 미국식 음식점이라는데 감자튀김이 환상적이다. 정말.

    그리고 드디어 오늘! 5월 9일 전승기념일이 토요일이었기 때문에 월요일인 오늘도 대체휴일로 쉬게 된 것. 오늘은 벼르던 어벤저스2를 러시아어로 보고 (덕분에 내용 이해에 큰 지장이 있었지만 재밌었다.) 맛집탐방을 했다. 오늘 가기로 한 곳은 독일 대사관의 리셉션이 열린다고도 하는 스테인브라우 펍.

     여기에 이런 곳이? 있을까 할 정도로 외진 곳에 있다. 양조시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직접 양조하는 모양인데, 맥주 값은 100솜으로 저렴한 편. 각각의 맥주가 맛이 확연히 구분되는 편은 아니었지만 꽤나 맛있는 맥주였다. 가격 생각해 보면 더 바랄게 없을 정도.

     문제의 소세지. 맛있고 양많고 좋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냥 메뉴에 있는 소세지 3개씩을 종류별로 다 준 것. 1900솜, 우리나라 돈으로 약 3만 8천원의 어마어마한 가격! 근데 정말 맛있었다. 생각보다 많이 짜지도 않고.

    샐러드가 먹고 싶어서 시켰는데... 생선은 뭔지 모르겠지만 비렸다. 감자는 정말 맛있다.

    그리고 나눈 동기들과의 이야기. 공통적으로 요즘 딱히 행복하지 않단다. 물론 이렇게 주말에 노는 것은 재밌고 좋지만, 그것이 삶의 전반적인 만족도를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딱히 들지 않는 것.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기본적으로 하는 일이, 우리가 외국에 있다고 체험할만한 요소가 별로 없다는 것이 문제인 듯 했다. 아, 어찌해야 좋단 말인가. 이렇게 주말을 마치고 내일부터는 다시 학원을 가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이 곳에 온지 이제 곧 한 달이 되어 간다. 이 시기에 대한 평가는 뒤로 좀 미루고 싶다.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우리의 모습으로 차근차근 다가가고 있다고 믿을 수 밖에.

    + 이렇게 행복하지 않은 환경이 조성되는 데는 분명히 여러가지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키르기즈의 부족한 관광 인프라와, (아마도) 계속 지속되고 있을 듯 한 코이카 현지교육 프로그램의 문제, 신설 사무소가 겪을 수 밖에 없는 여러가지 시행 착오 등 피할 수 없는 부분도 분명히 있겠지. 그래도 한국에서 기대했던 현지 교육과는 분명 다르다. 나만 행복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모두가 그렇게 느끼는 거라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지? 그리고 그 문제가 지속되어 왔다면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닌지?

    ++ 한국에서는 거의 꿈을 꾸지 않는데 여기 와서는 자주 꿈을 꾼다. 내용은 별 것 없지만 그래도 꿈을 계속 꾸는 것은 그닥 썩 달가운 일은 아니다. 그만큼 스트레스를 은연 중 받고 있는 모양.

    +++ 이제 남은 한달을 잘 보내고 나면 집도 구해야 할 것이고, 그곳으로 또 한번의 이사를 해야 한다. 벌써부터 걱정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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