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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100, 그의 근황 2.
    코이카 2015. 7. 26.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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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가 키르기즈스탄에서 생활한지도 어느 새 100일이 되었다. 탈라스로 파견되어 생활한지도 1달 반이 되어간다. 그는 이 시간의 흐름이 사실 전혀 달갑지 않다. 특히나 지난번 마지막으로 블로그에 글을 올린 뒤 지금까지의 생활을 돌이켜 생각해보니 더욱 그러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의 어제는 오늘과 비슷하고, 내일은 오늘과 비슷할 것이었기에 그는 최근 생각하기를 멈췄다. 그저 흐르면 흐르는 대로, 닥치면 닥치는 대로, 하루 하루 끼니를 해결하는 삶에서는 생각은 괴로울 뿐이었다. 생각을 멈춘 대신 생각을 대신할 무언가 - 책조차 구하기 쉽지 않은 그에게 아이러니하게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게임이었으므로 게임을 - 를 손대기 시작했으며, 그 여파로 조금씩 낮과 밤이 뒤바뀌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문득 정체의 괴로움이 엄습해오는 때가 있었는데, 이젠 그 괴로움이 단순한 짜증인지 아니면 답답함인지조차 구분하기 힘들 지경이 되었다. 그는 답이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을 멈추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라는 것을 깨닫고 생각을 차차 멈추어갔다. 그러던 와중 100일이 되었다.

    2.

    그는 아침 9시경 일어난다. 알람은 8시 30분부터 10분 간격으로 꾸준히 울어대지만 유독 아침이면 몸이 무겁다. 유독 몸이 무거운 이유는 잠의 질이 좋지 못해서라고 그는 생각한다. 우선 침대가 지나치게 좁아서 모로 누워 자는 버릇이 있는 그는 늘상 허리가 아프다. 더구나 그가 자는 방은 동향으로 새벽 6시 30분이면 창쪽으로 둔 발이 뜨거울 정도로 햇빛이 들이친다.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한 번 이상 깨어나게 되어 있어서인지 개운하게 깊이 잔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일어나면 냉장고를 열어 물을 마시고, 요구르트를 마시고, 얼마 전 사다놓은 천도복숭아를 하나 먹고, 최근 사다놓은 꿀을 한 스푼 먹는다. 그리고 화장실로 가서 변기를 닦는다. 그의 집 변기는, 아니 키르기즈스탄의 변기는 참 요상한 구조라서 매번 일을 볼 때마다 변기를 닦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니다. 그가 어디엔가 써 놓았던 것처럼 아예 독특한 자세를 취하지 않는 이상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대충 씻는 둥 마는 둥 하고 면도도 3일 정도는 생략한 채 걸어서 5분 거리의 키르기즈어 선생님 집에 공부를 하러 간다. 이 때가 아침 10시. 11시까지 하루 중 가장 생산적인 활동인 키르기즈어 수업을 끝마치고 다시 5분 거리의 그의 집으로 돌아온다. 12시 경, 동기의 집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점심을 해 먹는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최근 그에게도 학생이 생겼다는 것이다. 키르기즈 여중생 3명을 데리고 시작한 한국어 수업은 그래도 그에게 나름 보람찬 일이었다. 비용과 효용의 측면은 제쳐두고라도, 지금 만들고 연습해 놓은 자료들이 나중에 보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다 당장 무언가 할 일이 그에게는 그만큼 시급했기 때문이다. 물론 늘 그렇듯, 그의 일은 쉽게 가는 적이 없기 때문에 최근 2명의 학생이 오기 힘들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는 잠시 멘탈붕괴에 빠졌다. 사실 수업이 엎어진 것은 비단 이번의 일만은 아니었다. 그는 얼마 전 한국에서 일하고 싶다는 어떤 남자의 수업 의뢰를 받았던 적이 있다. 그 당시 집도 구하지 못했던 그에게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고, 몇번이나 전화를 하고 어찌나 귀찮게 굴던지 그는 짜증이 나는 한편, 이렇게 열심히 하려는 학생이니 수업하는 보람이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수업하는 장소도 무려 시속 80km의 택시를 타고 30분을 가야 하는 먼 장소였지만 그래도 나름 열심히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새벽까지 수업준비를 했었다. 그리고 대망의 수업 첫날, 그는 땡볕에서 30분을 기다리고는 수업을 오늘 못하겠으니 2일 뒤에 오라는 통보를 듣고 만다. 2일 뒤에도 역시나, 집을 나가려고 하는 찰나 오니 말라는 전화를 들었다. 그리고는 파토. 그는 문득 그때 생각이 났다. 다행이도 한 명의 학생은 똘똘하니 잘 따르리라 생각하는 그였지만, 이도 그야말로 사상누각이라는 것을 그는 잘 안다. 그리고 1명을 위해 수업을 준비한다고 생각하니 의욕 또한 3분의 1로 줄어드는 느낌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수업을 마치고 나면, 만성 피로 + 수업 준비에 의한 피로 + 수업 진행에 따른 피로 3종세트를 직격으로 얻어맞고 그는 낮잠에 빠져든다. 낮잠이 밤잠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닐까 문득 생각해보지만, 어쩔 수 없다고 그는 생각한다. 억지로 눈을 떠서 적당히 놀다가 저녁 장을 보러 나가는데 이 때가 오후 5시. 저녁을 해먹고 정리하면 7시. 잠시 쉬다가 운동장을 걸으러 나갈 때가 약 7시 반. 그는 시간이 참 빠르게 간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독한 기시감을 느낀다. 아, 이거 언제 했던 기분이야, 물론 어제도, 그제도, 일주 전에도 비슷한 생활을 지속했기에 기시감이 아닌 경험의 반복일 뿐이다. 쳇바퀴를 돌듯 운동장을 몇바퀴 돌아 귀찮은 꼬맹이들의 조롱을 무시하며 집으로 돌아오면 약 9시, 이 때부터 시간은 정말 무서운 속도로 흐르기 시작하는데, 무얼 하지 않았음에도 어느 새 시간은 11시가 되어 있고, 키르기즈어 숙제를 조금 하고 게임을 켰다 끄면 새벽 1시 30분. 그는 자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는 한편, 지금 자지 않으면 굉장히 괴로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간신히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지우고 나면 2시. 그리고 그는 잠에 든다. 그리고 이런 생활을 그는 거의 한달 째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3.

    그는 무엇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고 느낀다. 동시에 과연 이것을 돌이킬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참 슬픈 일이지만 그가 파견된 키르기즈의, 탈라스의 환경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그가 최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요리인데, 그의 요리실력은 나름 꾸준히 상승하고는 있으나 최근 식재료의 한계에 봉착하고야 말았다. 파견되기 전날 사무실 사람들과 먹었던 삼겹살을 끝으로, 그는 신선하고 맛있는 고기를 먹을 수 없었다. 채소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종류의 한계를 극복하기가 참 어렵다고 느낀다. 그는 거의 매일 집밥을 먹지만 한편 통조림, 햄 등의 가공식품을 한국에서보다 훨씬 많이 먹고 있어서 집밥이 반드시 건강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문득 한다.

    사실 최근 그를 괴롭히는 것은, 모든 고통의 근원이라는 비교에서 비롯되었다. 키르기즈의 환경같은 생활적인 요소야 둘째 치더라도, 비슷한 시기 다른 나라의 다른 기관으로 파견된 많은 단원들이 본격적인 일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특히 같은 한국어 분야로 파견된 단원들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커서 그는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해서 이 지경이 된걸까'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 상황이 나아지든 나아지지 않든 그것이 9월까지 지속되리라는 것은 이미 불 보듯 뻔한 일인지라 그는 더욱 답답하기만 하다. 9월 이후의 일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봐도 긍정적인 생각은 딱히 떠오르지 않는 것이므로... 그는 생각을 다시 멈추기로 한다.

    4.

    그는 이런 생각을 한다. 이런 시간도 언젠가는 그의 인생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시간일 것이라고. 그러나 한편으로는 알고 있다. 그의 인생에 있어서 군대보다 더욱 재미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지금이라고. 하물며 군대에서도 배울 것이 있었는데, 여기에서 배울 것이 없을리 없다고 생각하다가도 군대에서 배운 것들이 딱히 긍정적인 배움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는 다시 한 번 머리를 감싸쥔다. 그러는 와중에도 시간은 흘렀고, 흐르고 있다. 어차피 내일은 또 다시 비슷한 일과가 시작될 것이고, 그 시간을 살아내는 것 말고는 그에게 방법은 없다. 스스로가 한심해지는 생각은 한켠에 접어 두고, 그는 내일은 청소기를 한번 돌려야겠다고 생각한다. 바닥의 먼지같은 시간들이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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