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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84. '배운 것'과 '알게 된 것'.
    코이카 2015. 7. 10. 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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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아, 지난 글을 쓰고 최소한 3일 안에 이 글을 쓰고자 했는데 역시나 의지박약으로 일주일만에 글을 쓰게 된다. 무료한 삶은 사람을 게으르게 만든다. 조만간 (이렇게 써 놓고 아마도 꽤나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서야 쓰겠지만) 쓸 생각이지만 지금의 내 생활은 그야말로 군대보다 재미 없는 삶을 살고 있다. 물론 이런 삶도 나쁘지 않으며, 누군가는 소박한 일상의 소중함을 느낄 것이고, 심지어 삼시세끼 등의 예능에서는 하루 세 끼 밥 먹고 사는 일을 예능으로까지 만들고는 한다. 그렇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별다른 감흥이 없는 소리다. 작은 동네, 별다른 유적도 없고, 정신적인 세계를 체험할 일도 없고, 음식의 다양성도, 딱히 할 일도 없는 그런 일상. 그저 하루 세 끼, 아침은 요구르트를 마시니 남은 두 끼를 해 먹고 그 사이사이 별다른 큰 일 없이 지나가는 날들의 연속. 아, 오늘은 이런 푸념을 쓸 것은 아니고, 읽었던 글 중에 뭔가 스치는 것이 있어 남긴다.

    http://bluexmas.com/18336

    이 글에서 일부를 발췌한다. 사실 본 글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셰프들 + 요리 학교의 필요에 대한 이야기지만 나에게도 뭔가 와닿는 부분이 있으니... 음식에 관심이 있고 시간이 되는 사람이라면 저 홈페이지를 즐겨찾기 해 놓고 꾸준히 보는 것도 좋을 듯. '외식의 품격'이라는 책을 쓴 이용재 작가의 홈페이지인데 나름 배우는 것이 많다.

     

     

     

    (전략)

    1. 조리학교의 의미/유효성 : 이에 대해서는 저 4년 전 글에서 거의 전부 다뤘다. 요약하자면 그렇다. 조리학교의 존재는 필요하다. 또한 도움도 된다. 하지만 학교의 교육은 커리어의 출발점일 뿐이다. 이후의 경험이 진짜 셰프를 만든다. 그리고 그 경험은 하루 아침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확하게 능력 자체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는데, 시간을 들이지 않겠다는 결정이 능력의 문제로 납작하게 만들어 버리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나는 일단 운영자의 길로 접어 들면, 이 환경에서는 지속적인 자기 계발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중략)

    어쨌든 그의 인터뷰는 조리 학교가 대세로 자리 잡는 이 현실에서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외국 요리를 잘 하기 위해서는 외국에서 반드시 공부해야만 하는 것인가? 외국의 학교에서 공부하고 미약하나마 실무 경험을 쌓은 나 자신의 경험을 바탕 삼아, 몇 가지로 나눠서 생각해 보았다. 첫째, 원칙적으로는 반드시 외국-서양-에 나가야 서양 조리를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단서를 반드시 붙여야 한다. 일본처럼 서양 음식이 완전히 자국화 되어 익숙한 상황이어야 한다. 한국의 현실은 어떤가? 각자 느끼는 바가 다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본다. 한국이 현재 안고 있는 음식의 문제, 즉 맛없음은 단지 서양 음식 만이 아닌, 음식을 둘러싼 시각 또는 인식이 원인이다.

    따라서 두 번째, 그러한 인식이 잡혀 있지 않다면 그저 여기의 토양이 나의 배움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만으로 나가봐야 딱히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달리 말해 낯선 환경에 나를 던져 바꾸겠다는 생각이 없다면, 즉, '조리 학교가 대세이므로 이를 거치기만 하면 난 유능한 요리사가 될 수 있다'라는 생각만 한다면 도움 될 게 하나도 없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위에서 언급했다. 학교든 뭐든 '교육'의 범주 안에 속하는 교육은 커리어의 극히 일부다. 그 다음 단계, 커리어의 울타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장이 진짜고 그건 어느 시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두 번째, 또한 교육을 그저 기관이나 시스템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라 생각하고, 거기에서만 수동적으로 얻으려 든다면 그 또한 별 의미가 없다.

    다시 나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만 8년 동안 학교를 3.5년, 회사를 4.5년 동안 다녔다. 양쪽에서 많은 것을 얻었지만, 가장 중요한 건 그 둘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그 밑으로 흐르는 시간 동안 간접적으로 흡수한 남의 문화가 결국은 가장 큰 자산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건 형태오 둘타리도 없으며 최선은 각자 알아서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남의 나라라면 어학의 어려움이 이 모든 것의 흡수를 방해할 것이다. 물론 음식을 공부한다면 학교 충실하게 다니고 수업 잘 들으며, 또한 관심 가는 음식을 부지런히 먹어 봐야 할 것이다. 그것만으로 분명 큰 도움이 되겠지만, 당연히 전부는 아니다. 내가 찾아야 하는 부분이 있다. 그걸 찾기 위해선 적어도 그 존재 가능성 자체라도 인식해야 하는데, 이 또한 모두가 경험하는 것도 아니다. 다시 한 번, 조리학교 나와서 좋은 레스토랑 주방에서 착실히 일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요리사 또는 셰프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서양의 요리이고, 그 나라에서 그렇게 돌아가는 것처럼 내가 아주 어린 나이부터 요리 경험을 쌓지 않았다면 그건 그저 기본 이상의 추진력을 주지 못할 수 있다. 또한 현재 한식의 시각, 또는 문제 해결 방식을 의식적으로 떨쳐버리지 않는다면 양식 조리 교육을 받는 의미가 없다고도 생각한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건 요리에만 적용되는 사안도 아니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전체를 볼 능력을 가르치지 않는다. 요리에만 국한시키자면, 난 기술 교육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달리 말해, 그런 음식이 분명히 존재하는 안타까운 현실에서조차 궁극적인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발전을 위해 더 넓게 보아야 하는 시점에서, 조리 학교라는 시스템으로 자꾸 초점이 몰리는 현상이 오히려 시각을 더 좁히는 결과를 낳는 것이 아닌가. 그건 거의 모든 것을 배우러 무조건 학원으로 몰리는 현실의 연장선 아닌가? 궁극적인 염려는 거기에서 비롯된다.

    - 2015. 6. 29. http://bluexmas.com/18336

     

     

     

    뜬금없이 요리 얘기냐고 할 수 있겠지만, 이 이야기는 비단 요리계에만 적용되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굳이 마지막 문단을 덧붙이지 않아도 요리와 요리 학교에 관련된 내용을 다른 분야로 치환해도 이 문장들은 그대로 성립한다. 특히나 사범대를 나와 선생님을 해 본 경험이 있는 나는 이 글 전체를 사범대 / 교사로 치환해서 읽었다. 곱씹을수록 맞는 내용인지라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더하여 현재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살면서 많은 경험을 해보고자 최선의 방법을 선택하여 코이카에 와 있는' 나에게는 그야말로 바늘이 콕콕 박히는 듯한 글이었다. 바로 이 문단,

    따라서 두 번째, 그러한 인식이 잡혀 있지 않다면 그저 여기의 토양이 나의 배움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만으로 나가봐야 딱히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달리 말해 낯선 환경에 나를 던져 바꾸겠다는 생각이 없다면, 즉, '조리 학교가 대세이므로 이를 거치기만 하면 난 유능한 요리사가 될 수 있다'라는 생각만 한다면 도움 될 게 하나도 없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위에서 언급했다. 학교든 뭐든 '교육'의 범주 안에 속하는 교육은 커리어의 극히 일부다. 그 다음 단계, 커리어의 울타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장이 진짜고 그건 어느 시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두 번째, 또한 교육을 그저 기관이나 시스템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라 생각하고, 거기에서만 수동적으로 얻으려 든다면 그 또한 별 의미가 없다.

    그렇다. 나가봐야 딱히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낯선 환경에 나를 던져 바꾸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왔지만, 나는 바뀌었는가? 깊이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이 나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이 과정이 '교육'의 범주 안에 속하는 과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내가 일하는 과정은 크게 봐서는 교육이지만 나는 교육을 받는 입장이라기보다 교육을 하는 입장이며,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 교육을 하는 입장조차 불확실하게 유지되고 있다. 더하여 명확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조차 없는 상황에서 '봉사자의 역량' 운운하며 알아서 할 일을 찾아~ 라는 식의 태도에 직면해 있다. 그렇다고는 하나 '낯선 환경에 나를 던져 나를 바꾸겠다는 생각이 없다'는 측면에서 나는 충격을 받았나보다.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어디서부터 바꿔야 하는가. 아니,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

    이 글을 쓰는 오늘부터 중학교 1~2학년 학생 세명을 데리고 집에서 한글 수업을 시작했다. 나는 국어교육의 경력은 있지만 한국어 교육의 경험은 일천하며, 나는 학교를 거치지 않고 현장으로 바로 뛰어든 것이나 다름 없는 상황이었다. 어쨌거나 몇 가지 우여곡절을 거쳐 첫 번째 수업을 끝내고 나서 든 생각은 '과연 이게 내가 진짜 하고자 하는 일이었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적어도 해외 봉사를 오게 된 각오에서, 나는 내가 조금 더 적합한 곳에, 내가 필요한 곳에 쓰이기를 원했다. 나는 이러한 생각을 '나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라고 이해했다. 적어도 나는 내 노력과 내 능력이 좀 더 많은 사람을 효율적으로 돕고, 좀 더 범지구적으로 (이 생각부터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긍정적인 영향력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내가 지금 가르치는 이 아이들의 인생이 한글을 배움으로써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어 갈 수는 있겠지만, 과연 그들에게 한국어가 정말로 필요한가를 스스로에게 물으면 한국어를 가르치는 나조차 차라리 한국어를 배울 바에는 다른 것을 배우는 것이 더 낫겠다는 대답이 나오는 것이다. 좀 더 단순한 문제로 치환해서, 과연 지금 나의 영향력인 이전의 학교에서 일하던 나에 비해서 더욱 커졌는지를 묻는다면 이조차도 대답하기 쉽지 않다. 한국 학생들에게 (이 학생들에게 내가 없다고 해서 국어를 가르칠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런 점에 질려서 다른 길을 찾아온 것이지만) 국어를 가르치는 것과 키르기즈스탄 탈라스에서 키르기즈인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 어느 쪽이 더 큰 '도움'이 되는 것일지 이제는 나 스스로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차라리 이제와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와서 이렇게 세금 까먹으며 필요한지조차 알 수 없는 한국어 수업을 할 바에야 한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유니세프에 기부를 열심히 하는 편이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바가 좀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고. 아마도 이 생각은 크게 틀린 생각은 아닐 것이다. 키르기즈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친다고 해 봐야 그들에게 주된 목적은 한국으로 일하러 가는 것이며, 한국으로 일하러 간다고 해도 결국은 그들은 외국인 노동자 - 불법체류자의 연쇄에 휘말이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 과정에서 버는 돈이 많아서 주변에서 만나는 한국을 다녀온 사람들이 어쨌거나 한국행을 다시 원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러한 한국어교육의 목적과 경과가 과연 도덕적으로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스스로도 납득되지 않는다. 외국인 노동자의 처우나 한국 사람들이 외국인 노동자를 어떤 시선으로 보는지는 한국에서 30년 동안 살았던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까.

    배우는 곳이었고 동시에 직장이었던 '학교'를 벗어나 낯선 환경에 뛰어들자 여러가지 생각이 많아진다. 궁극적으로 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며,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을 더욱 해봐야 할 시점이다. 오히려 이런 고민이 이전에 해 오던 고민보다 나를 성장시키리라고... 굳게 믿는 수 밖에는 없다.

    + 요리 글을 인용한 만큼 지금은 이전에 비해 뭔가 뚝딱뚝딱 만들어서 맛있게 한 끼를 떼울 수 있을 만큼은 요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건 긍정적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듯하다.

    ++ 생활은 잉여롭지만 시간은 너무나도 빨리 흐르며, 휴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피로는 가시지를 않는다. 뭘 해야 할까.

    +++ 동기 단원과의 깊은 이야기에서 나온 얘기지만, 결국 문제의 해결은 내가 바라는 '목표'를 찾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남 일에 이래라 저래라 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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