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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71, 집을 구하다.
    코이카 2015. 6. 27.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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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보금자리를 찾았다. 그리고 입주했고, 침대도 들여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사람 사는 꼴은 갖춘 상태. 일단 오늘은 사는 꼴 부터 보고.

    일단은 침실. 일찌감치 카페트는 걷어치웠다. 다음 사진에서 볼 수 있듯, 키르기즈의 집은 오만 구석에 아주 카페트를 도배를 해 놓는데 (심지어 벽에도!) 개인적으로는 카페트 자체를 싫어하는데다 온갖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사는 키르의 바닥이 결코 깨끗할 일 없기에 침실로 쓸 방을 정한 뒤에 바로 카페트를 둘둘 말아 옆방에다 치워버렸다. 참고로 지금 계약한 집은 방이 총 4칸 (거실 용도로 사용되는 곳 포함), 주방, 화장실, 욕실, 발코니로 이루어진, 꽤나 큰 아파트인데 그 중에서 나는 방 2개 (실질적으로는 침실 1개만) 사용하는 중.

    처음에는 침대를 쓸 생각이 없었는데 막상 침대도 없는 방에 좁은 깔개만 가져다 놓으니 이게 사람 사는 방인지 무슨 그지소굴인지 알 수가 없어서 침대를 요구했더니 흔쾌히 사주었다. 하기사 그만큼 집값을 비싸게 주긴 했지. 키르기즈의 1달 월급은, 선생님 기준으로 한달에 약 100$ 수준, 그런데 집세를 한달에 250$로 3개월치를 선불로 줘버렸으니 안 구해주는게 이상하지. 키르기즈의 집 임대 시스템은 집안의 가재도구까지 모두 갖춰서 빌려주게 되어 있단다. 밑에서 보겠지만 세탁기, 주방도 잘 갖춰진 편.

     복도에 카페트가 보이는가? 앞으로 찍히는 모든 집에 깔려있다.

    이 정도 집을 구하기 위해 정말 탈라스 시내에 있는 20여개의 아파트를 돌아봤는데 참... 아무리 내가 봉사자로 왔다지만 건강에 지장이 있을 정도의 집에서는 살 수 없지 않은가. 이 집의 경우도 2년을 임대하면 좋겠지만 11월까지밖에는 살 수 없다. 다른 동기 단원의 집 역시도 비슷한 조건인데, 추워지는 11월부터는 주인들이 따뜻한 집으로 와서 살고, 날이 풀리면 다시 자신들의 원래 집인 좋은 땅집에서 살기 때문에 그간 비어있는 집을 관리 할 겸 돈도 벌 겸 임대를 하는 거다. 이제 문제는 11월인데... 벌써 고민에 지끈지끈.

     주방. 어지간한 한국 주방보다 좋아보인다. 심지어 오븐에 전기 2구, 가스 2구 레인지까지! 냉장고도 좋은 편이고 전체적으로 깨끗하다. 그런데 식탁과 의자가 없어서 지금 당장은 사용할 수 없는 상태. 냉장고에는 물, 아침 식사로 먹는 케피르 및 요구르트, 그리고 오렌지 주스만 들어있다.

     베란다에 식물들. 일주일에 한 번씩 물주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죽으면 물어줘야 하는걸까? 그래도 식물 기르는걸 좋아하는 편이니 다행이다.

     거실로 쓰는 큰 방인데... 정말 휑~하니 넓고 아무것도 없다. 쓸 일 없을 듯. 저기 보이는 저 티비장이 책상이랍시고 쓰라고 준 물건인데, 하하, 웃지요. 겉보기에는 멀쩡하지만 미묘하게 창쪽으로 경사가 져 있는데다 방 안에서 말을 하면 이상하게 동굴에서 말하는 것 처럼 소리가 울린다. 딱히 들어가지도 않고 콘센트 사용으로만 사용하고 있는 방.

    화장실. 깨끗하고 좋아보이죠? 샤워커튼을 달았더니 그럴싸하다.

    이렇게 깨끗해보여서 계약을 하고 봤더니... 지금부터는 웃픈 이야기.

    1. 수압이 지랄맞게 약하다.

    설마설마했고, 수압의 중요성은 마녀사냥에서 허지웅이 이야기하기 전부터 알고 있었고, 심지어 이 집 보면서 세면대까지 켜 봤음에도 불구하고 뒤통수를 아주 별이 보이도록 얻어맞은 사항. 입주 첫 날, 짐을 대충 정리하고 씻고 자자! 샤워기를 켜는 순간... 물이 찔찔... 내 눈물도 찔찔... 진짜 억울하고 뭔가 콱 치고 올라오는 느낌에 혼자서 미친놈처럼 욕하며, 웃으며, 울며 샤워실에서 한참을 넋을 놓고 있었다. 욕조에 바가지는 청소용이 아니라 물을 받아서 끼얹는 용도였던 듯. 하기사 여기 사람들은 자주 씻질 않으니 별 상관 없는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매일 샤워를 한단 말이다. 평소 15분 걸리던 샤워 시간이 찔찔 나오는 물을 받아서 끼얹다보니 약 30~40분 걸리는 상태. 키르기즈에 와서 대체 샤워로 몇 번의 문제를 겪는걸까.

    2. 이런 변기를 봤나...

    변기. 깨끗하고 좋은, 아줌마가 자랑한 그 변기. 이 변기의 문제는 비단 이 집만이 아니라 키르기즈의 전반적인 문제라고 보여지는데, 대체 왜 물 내려가는 구멍이 저기에 달렸느냔 말이다! 사진에서는 잘 식별되지 않지만, 저 물 내려가는 위치는 변기에 앉았을 때 항문보다 요도에 더 가까운 곳이다. 한 마디로 대변을 보면 변기 내부의 경사면에... (이하생략) 내가 매번 변기를 닦는 불상사를 막아보려고 온갖 포지션을 시도해 보았지만 거의 불가능. 한 가지 가능한 포지션은 평소에 앉는 자세를 뒤집어 물탱크를 끌어안듯 앉는 것인데, 바지를 벗지 않는 이상 그 자세가 불가능하지 않은가. 아니면 키르기즈 사람들은 전부 항문이 앞에 달리기라도 했단 말인가? 진짜 뭐라고 할 말이 없는 부분.

    3. 불안정한 전압과 백열등

    누런 백열등이 싫어서 흰 형광등으로 바꿔달라 요구했고, 싹 바꾼지 하루만에 등 두개가 나갔다. 그러더니 어제는 침실의 불마저도 퍽! 소리를 내더니 타는 냄새와 함께 운명. 이 역시도 일부 집의 문제가 아니라 키르기즈 대부분의 집의 문제인데, 일단 전압이 불안정한데다 그 집안의 배선시설마저 엉망이라 이 사람들은 전기에 대한 공포가 전혀 없나 싶을 정도로 위험천만하다. 여지껏 가본 대부분의 집들에는 망가진 콘센트들 한 두개는 기본에, 벽에서 튀어나와 너덜거리는 콘센트는 옵션에, 심지어 등도 전선을 천장에서 빼서 그 끝에 소켓만 붙인 형태의, 그나마도 절연조차 제대로 되지 않아서 납땜한 부분이 그대로 노출되어있는 등이 대부분이다. 거기에 전기 잡아먹는 귀신인 노오란 백열등까지... 모르긴 몰라도 전기 문제로 매년 몇명씩은 죽어나가지 싶다.

    4. 유목민의 쓰레기 처리 방법

    그런거 없다. 그냥 버린다. 왜? 자연에서 얻은 것은 자연에 돌려줘야 하니까!  길가에는 온통 쓰레기 천국에, 조금이라도 틈이 보일라치면 거기에는 어김없이 쓰레기가 그득하다. 아파트의 쓰레기 처리 방법은 더 터프해서 그냥 쓰레기란 쓰레기는 전부 봉지에다 넣어버리고 (음식물 쓰레기라고 예외는 없다.) 그냥 가져다 쓰레기장에 쿨하게 던지면 끝. 그럼 이걸 정기적으로 치우... 기 전에 어느 정도 모이면 태운다! 플라스틱, 가스통, 봉지, 뭐 이런거 상관 없이 그냥 태우는거다. 아주 새까만 연기와 함께 유독가스일 것이 분명한 연기가 온 동네를 자욱하게 뒤덮는데도 태운다. 그래도 처리 불가능 할 정도로 쌓이면 누군가 치우는데... 이 역시도 태운다! 그것도 내가 사는 아파트 한 가운데 공장같은 곳에서 태운다! 그 굴뚝에서는 아주 새까만 연기가 나오는데 이쯤되면 키르기즈가 청정지역이라는 말은 사실 농담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쯤 되니, 사실 키르기즈에 필요한 것은 어따 써먹을 데도 없는 한국어 나부랭이가 아니라 쓰레기 분리수거 및 시민 의식 개선이 아닐까 싶을 정도. 이게 시골의 얘기라서가 아니라 수도인 비쉬켁도 상황은 거의 비슷하다. 이대로 괜찮을리가 없는데 대체 뭘 하고 있는걸까?

    뭐... 그래도 이 집 정도면 나름 살만하니 붙어서 살게 되었고, 좋으나 싫으나 앞으로 3개월은 살아야 한다.

    밥은 뭐 여전히 나름 잘 먹고 사는 중. 색감이 백열등때문에 거지같지만 나름 쥐포 고추장 볶음, 계란말이, 김으로 구성된 아주 맛있는 백반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돼지고기를 사다 먹었는데... 그냥 햄이나 사다 먹어야겠다. 내일 수육을 시도해보고 이마저도 안되면 그냥 포기.

     

    + 넘쳐나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다 보니 자아 성찰을 하게 된다. 나에 대한 정리는 다음 시간에.

    ++ 탈라스는... 정말 불모지나 다름 없다. 일단 외국 음식점이 없다. 그 어딜 가도 찾아볼 수 있는 중국 음식점조차 없다! 그저 외국 음식이 생각나면 몇 군데 있는 피자집에서나 간간히 맛 볼수 있는 정도. 당연히 일본 음식도 없고, 양식은 더더욱이나 없고, 한국 (혹은 고려인) 음식점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고... 가끔 이상한 곳에서 한국 or 중국 식재료를 팔아서 이를 통해서 간간히 연명하며 살고 있는 상황. 식초만 제대로 된 것을 구해도 양파장아찌라도 만들겠는데, 여기는 식초가 전부 빙초산 뿐이다. 에휴.

    +++ 역시나 웃픈 이야기. 그 불모지인 탈라스에 얼마 전에 갑자기 못보던 헬스클럽 플랭카드가 붙었다. 더군다나 뭔가 그럴싸해서, 오, 뭔가 새로운 곳이 생겼나 하고 전화를 해서 러시아어밖에 하지 못하는 아저씨와 어찌저찌 대화해서 위치를 알아낼 수 있었다.

    이게 바로 그 문제의 플랭카드의 일부인데, 가보니... 와하하. 습하고 어둡고 무서운 지하에 정말 고문도구로도 못 쓸 정도의 열악한 시설, 특수부대 출신이 아닐까 의심스러운 이상하게 몸 좋은 러시아 관장님까지. 물론 그분은 친절하고 좋은 분이었지만 헬스장을 본 나는 웃을 수 조차 없었다. 기대를 한 내가 병신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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