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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156. 한국어 수업 2주차.
    코이카 2015. 9. 20.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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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업.

    수업은 나름 궤도에 올라 잘 진행되고 있다. 지난주로 모음에 대한 진도를 끝내고, 이번주는 자음에 대한 진도를 나갔는데 확실히 자음으로 들어오니 난이도가 높아지긴 하는 모양. 문제는 결국 자음과 모음, 그리고 다음주에 배울 받침을 합친 '합자'를 사용한다는 건데 익숙해질 때까지 반복하는 수 밖에는 없어 보인다. 주말이 지나면 아이들은 많은 정보를 까먹고 오기 때문에 이를 계속 반복하여 숙지시키는 것이 참 어려운 일. 일단은 수업 시작할 때 복습과, 중간중간 보는 간단한 테스트로 강제로 반복시키는 수 밖에는 없어 보인다.

    다행스러운 것은 자음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는 발음의 어려움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현재 자음은 글자 - 글자이름 - 예시 순으로 가르치고 있다. 예를 들자면 'ㄱ - 기윽 - 가위'순으로 가르치는 것. 물론 이렇게 가르친다고 받침까지 다 알수는 없는 노릇이라 받침은 따로 수업을 진행하려고 한다. 한가지 문제는 글자 이름을 가르칠 때 발생하는데, 훈민정음에서는 ㄱ - 기억, ㄷ - 디귿, ㅅ - 시옷으로 표기하여 다른 글자들과 다른 예외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 글자들이 니은, 비읍처럼 ㅣ와 결합한 초성, 으에 결합한 종성으로 일정한 것과는 차이가 있어서 예외를 두는 것이 어렵다는 것. 훈민정음 창제 당시 윽, 읃, 읏 의 소리를 나타낼 한자가 없어 발생한 문제로, 사실 북한에서는 이미 기윽, 디읃, 시읏으로 바꿨다고 한다고 들었다. 어찌할까 조금 고민하다가, 어차피 이 아이들은 당장 시험을 볼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규칙을 일반적으로 적용하기 위하여 기윽, 디읃, 시읏으로 글자 이름을 가르치기로 하였다. 당연히 외우기는 더 쉽고, 발음에도 큰 문제는 발생하기 않았지만 나중에 시험볼 때 헷갈릴 수는 있을 듯.

    발음에서도 문제는 아예 없는 것은 아니어서, 여전히 아이들은 ㅗ와 ㅜ의 구분을 쉽게 하지 못하고 헤메고 있다. ㅚ역시도 ㅙ와 구분짓기가 상당히 어려운데, 키르기즈어에는 단모음 ㅚ발음과 비슷한 글자가 존재하여 단모음 ㅚ발음에 가깝게 가르치고 있으나, 이 역시도 현대 한국어 사용과는 달라서 조금 문제이긴 하다. 자음은 특별한 문제가 없는 가운데, 된소리의 발음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음의 경우 발음기관의 긴장이 강하게 유지되어야 하는데, 키르기즈어에는 막상 저런 긴장을 요하는 발음이 없어서 발음하기가 어려운 모양. 막상 나도 발음을 계속 따라하다 보니 입과 목구멍이 뻐근해 오는 것이 이래저래 발음하기 쉬운 글자는 아닌 것 같다. 받침은 전체적으로 난국. 폐쇄음으로 끝나는 받침의 경우에 이후에 공기가 새면 안되지만, 역시나 키르기즈어에는 마지막에 공기를 내보내는 글자들이 많아서인지 기윽을 '기으그'로, 디읃을 '디으드'로 발음하는 아이들이 많다. 역시나 안될때는 무식하게 반복.

    그러나 이런저런 내용상의 문제점이야 그렇다 쳐도,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출석이다. 평균 한 그룹에 8~12명정도가 출석을 하니 숫자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꾸준히 오는 아이들 사이에 오다 안오는 놈, 안오다 오는 놈들이 섞여 진도를 나가는 부분에서 애로사항이 꽃피고 있다. 앞서도 이야기 한 바 있듯 글자를 배우는 단계에서는 한번 빠지면 그 데미지가 상당하기 때문에 진도가 전체적으로 엉망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 한가지 안도(?)할 수 있는 부분은 이 수업이 방과후 수업이라서 출석률이 엉망은 아니라는 점이다. 다른 단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정규수업조차 그런식으로 다니다 말다 하는 아이들이 수두룩하다는 듯. 죄다 집안일로 바쁘고, 어쩌고, 안 오고, 빠지고... 여러모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편으로는 힘이 빠지는 것이, 정규 수업도 이모양 이꼴인데 방과후 수업에 강제로 나오게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 하다는 것. 에휴.

    아, 그리고 한 장의 사진.

    금요일 1시 수업은 교사들을 위해 교사 수업으로 잡아놨다. 얼마나 올까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나름 수업 언제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어서 그래도 아예 사람이 없지는 않을 거라고 '착각'했었다. 이 사진은 1시 33분경에 찍은 사진인데, 결국 누구도 코빼기조차 비치지 않았다. 그냥 웃지요. 별 감흥도 없어서 한시간 실컷 캔디크러시를 했다지.

    마침 교사 얘기가 나온 김에 키르기스의 교사 얘기를 좀 하자면, 여기 교사는 과연 수업을 하는지 의심스러운 경우가 많다. 예전에 한국어 수업 홍보할때도 그랬고, 주변 동기들에게 전해듣는 바도 그렇고 막상 수업시간에 수업을 하는 교사가 별로 없다. 뭔가 일지를 작성하는데, 그걸 수업시간에 애들과 같은 자리에 앉아서 열심히 적는 사람들이 정말 많고, 열심히 수업하는 선생님은 정작 몇 되지 않는 슬픈 상황. 뭘 적는지 물어보니 수업 계획서란다. 대체 왜 수업계획서를 수업시간에 작성하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여튼 교육 환경, 교사 전문성이 그다지 높지는 않은 듯. 여기까지 참견하기엔 내 코가 석자라서 그냥 눈 감고 지나가련다. 어쩌겠는가.

     

     

    생활.

    벌써 추석이 가까워졌는지 어제 밤에 추석 위문품이 도착했다. 꽤나 묵직해서 두근두근하며 열어보니 꽤나 많은 음식들이 꽉꽉 차있는 행복한 상황. 물론 대다수가 인스턴트고, 라면은 여기서도 구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인지라 그렇게 감흥이 크진 않지만 이게 어딘가. 특히나 반가운 것은 스팸, 육개장, 참치. 여기도 통조림은 많은데 막상 참치 통조림은 잘 볼수가 없고, 스팸은 더더욱이나 없어서 (아마도 이슬람인 탓이겠지만) 이보다 더 반가울 수 없었다. 당분간 일용할 양식으로 충분하지 싶다.

    생각해보면 참 경이로운 경험이다. 이 물건들은 외교 파우치로 들어온 건데, 내가 살면서 외교 파우치로 들어온 소포를 받아볼 일이 코이카를 오지 않았으면 있었을까? 그리고 살면서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키르기스스탄이라는 나라에서 살아볼 경험이 있었을까? 물론 백프로 만족스런 경험은 아닐지라도, 곱씹어 생각해볼수록 신기한 일이다. 벌써 5개월이나 지났다니. 그리고 잘 되든, 안 되든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니. 12월에 돌아갈 생각을 거의 굳힌 나지만 그래도 경험해보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더하여 최근 동기 한 명이 아파서 부엌을 우리 집으로 옮기게 되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부엌에 세간살이를 들여놓으니 이제사 사람 사는 집의 느낌이 난다. 그리고 그제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내가 이 집에 들어올 때 쇼파가 필요하다고 얘기할때는 그냥 무시하더니, 집주인이 아주 근사한 쇼파 세트를 큰 방에 가져다 놓았다. 모르긴 몰라도 네다섯명은 충분히 뒹굴만한 큰 쇼파를 가져다 놓은 터라 어중간하게 허리아픈 자세로 앉을 필요 없이 가서 편히 쉴 수 있게 된 것도 큰 발전. 11월에 자기네들 와서 쓸 생각으로 가져다 놓는 것이겠지만, 뭐 2달은 더 쓸 수 있으니 나에게도 이득. 2개월 바짝 즐기고, 할 일 바짝 땡겨서 하면 될 것이다. 아마도.

    날이 점점 추워지고, 비까지 오고 나니 먼 산에는 만년설이 산 중턱까지 덮여 있다. 막상 겨울 옷을 거의 가지고 오지 않았는데 12월까지는 버틸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막상 옷을 사기는 또 아깝고 말이지. 어떻게든 되겠지 뭐.

     

    + 최근 애니메이션이며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1998년에 나온 카우보이 비밥만한 작품이 없다. 벌써 한 4번째 정주행 하는데, 감동이 줄기는 커녕 매번 새롭네. 17년동안 퇴보한건 일본도 마찬가진가 보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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