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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148. 개학 2주차.
    코이카 2015. 9. 11.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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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드디어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는 점에 우선 감사하다. 워낙 실망의 연속인 나날이라 아마도 좀 더 시간이 지나야 이런 글을 쓸 수 있을 줄 알았거든. 어쨌거나 개학을 했고, 어찌어찌 수업을 굴려간지 1주일이 흘렀다. 확실히 일을 하니 무언가 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리하여 이제서야, 코이카에 온 지 5개월 가까이 지나고 난 지금에서야 나는 업무에 대한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드디어 내가 코이카에 와서 꼭 따라 써 보고 싶었던, 내 코이카행 결정에 꽤 큰 영향을 준 곰파의 글 형식을 따라 써 볼 수 있게 되었다! (http://gompa.tistory.com/511) 물론 나는 이렇게 정리된 글을 쓸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형식이라도 빌어다 전문적인 척좀 해야겠다.


    수업

    1.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그 방과후 수업을 시작했다. 이게 바로 그 시간표.

    총 4개의 그룹, 주 2회의 수업, 그리고 금요일엔 선생님과 한국 문화 수업을 개설했다. 200명도 넘는 인간들이 우글거렸던 걸 추려서 각 그룹별 17~19명씩의 인원을 배치했고, 교실도 마련했다. 프로젝터가 없는 건 아쉬운 일이지만 수업 규모가 작은 만큼 작은 교실에서 교탁 위에 의자를 두고 그 위에 노트북을 얹어서 PPT로 수업을 할 수 있었다. 수업 PPT는 지난 방학동안 중 2아이들을 가르친 것을 잘 보이게 수정해서 사용하고 있는데, 한 주 수업해 보니 큰 문제 없이 수업에 적용할 수 있었다. 칠판은... 그냥 나무판에 검은 페인트칠 해 둔 수준이지만 없는 것 보다는 낫다. 수업은, 그래,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예상했던 대로, 시간표에서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1시 수업은 학교 끝나고 바로 시작하는 수업인지라 학생들의 출석이 매우 양호하다. 심지어 명단에 없는 학생들도 와서 듣는지라 20명 정원의 교실이 꽉 차는 지경. 문제는 2교시, 2시부터 시작하는 수업인데 당연히 학교 끝나고 1시간의 공백이 있다 보니 출석률이 영 좋지 못하다. 3 그룹의 학생은 첫 수업에 20분 지각하여 5명 출석, 4 그룹의 학생은 심지어 1명 - 끝날 무렵 두명이 더 와서 3명을 앉혀두고 수업했다. 다행이 2번째 수업에는 교실도 정착되고, 아이들을 통해 얘기했던터라 8명 정도로 늘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절반도 출석하지 않은 상태. 뭐, 아예 수업이 없는 것 보다는 낫지만 그래도 썩 만족스럽지는 못하달까. 더군다나 글자를 배우는 현재 특성 상, 들쑥날쑥한 출석률은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고급 수업을 하는 경우라면 한 시간정도 빠져도 성취에 큰 지장이 없지만, 지금 글자는 배웠느냐 배우지 않았느냐에 따라 1 혹은 0의 극단적인 상황이기에 수업 진행이 어려울 수 밖에 없다. 마냥 복습을 거듭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뭐, 어쨌거나 수업 내용 면에서는, 첫 주는 모음을 배운다. 글자를 가르치는 것은 반복학습과 시범-따라하기의 연속인 듯 하다. 애초에 나는 글자를 가르쳐 본 경험이 없었지만, 그래도 3년간 아이들을 가르쳤고, 학교 문법에서 다루는 음운론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키르기즈어를 배워둔 것도 비교언어적 측면에서 큰 도움이 되었는데, 사실 생각한 것과 실제 아이들이 어려워 하는 부분이 차이가 있어 그 부분이 신기한 한편 의아했다. 예를 들어 키르기즈어에는 '어'발음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어-여'모음을 학습하는 데 있어 어려움을 겪으리라 생각했고, 많은 한국어 학습자들이 이 부분에 어려움을 느낀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던 터라 나름 준비를 철저히 했다. 그런데 오히려 '어-여'발음은 쉽게 인식하고 잘 따라하는 반면, 키르기즈 학습자들은 한국어 '오' 발음에 어려움을 크게 느끼는 듯 했다. 모국어 화자인 나는 한국인들이 발음하는 '오-우'발음을 쉽게 구별할 수 있었지만, 내가 발음하는 '오'발음을 키르기즈 학생들은 '우'로 인식하고, '우' 역시도 '우'로 인식하여 두 발음의 차이를 쉽게 인지하지 못하는 듯 했다. 이유를 생각해보니 키르기즈의 '오'모음은 우리나라 모음의 '어'에 가까운 소리가 나기 때문인 듯. 어쨌거나 반복 학습을 통해 이 구분을 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열심히 반복하는 중. 또 어려운 부분은 현재 쉽사리 소리로 구분하기 어려운 '왜-웨'발음의 구분이나, 원래는 단모음이지만 단모음으로 소리나지 않는 '외'발음을 '왜'와 구분하는 일인데, 이 부분은 사실 나도 어려운지라 입의 크기, 소리의 세기 등으로 계속해서 반복 숙달시키는 중이다. 나는 나름 발음을 정확하게 하는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딱히 그렇지도 않은 듯.

    어려운 점은 이러한 점을 명확하게 설명해 놓은 적당한 교재를 구하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영어 학습자를 위한 교재야 잘 나와 있겠지만 막상 키르기즈 내부에서는 구하기가 너무 힘들고, 지금 가지고 있는 키르기즈 한국교육원에서 나온 교재는... 솔직히 쓰기가 좀 어렵다. 지금 쓰는 PPT는 여러가지 교재를 짜깁기해서 내가 직접 구성하고 있긴 한데, 막상 한국어교육 전공이 아닌 나는 이게 맞는지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하는 중. 아예 글자도 모르는 학생들을 가르치리라고는 생각도 해 본적이 없어서 좀 더 당황스럽다.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는 자료들은 주로 영어 사용자들을 위한 교재이기도 하고. 당장 만들어놓은 PPT는 한달 분량인데, 이를 다 쓰고 나서 뒷부분 수업을 구성하는 데는 좀 더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생활

    일을 하고 나니 나름 하루가 쉽게 간다. 아침에 일어나서 과일과 요구르트로 아침을 먹고, 집안일을 하고, 씻고 빈둥대면서 오전을 보낸다. 점심을 조금 이르게 먹고 학교로 가서 수업을 한다. 수업이 마치면 집에 와서 쉬다가 저녁을 먹고 걷는다. 그리고 저녁에는 게임을 하거나 빈둥댄다. 이야, 이거야말로 날백수의 일과. 그래도 일을 고작 2시간 하지만 그 긴장감이 하루를 탄력있게 만든다.

    요즘의 식생활의 관심사는 아무래도 과일인데, 여기도 가을이 찾아오는지라 사과도 나오고, 얼마 전부터 시장에 오렌지가 풀리기 시작해서 오렌지도 사다 놓고, 복숭아는 끝물인지 한동안 안나오다가 오늘 큼직한 녀석들을 발견해서 냉큼 냉장고에 보관해두었다. 그리고 온 세상 어딜 가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바나나까지. 과일들이 싸고 달고 맛있다는건 참 좋은 일이지만, 그야말로 계절에 맞는 과일만 나오는지라 (수입 과일들 제외) 점점 추워지고 나면 난 뭘 먹어야 하나 걱정이다. 채소는 이미 하나씩 사라지고 있는데, 이미 시장에서 그나마 있던 쪽파는 자취를 감춘지 오래. 아아, 파가 없으면 대체 뭘로 맛내기를 한단 말인가.

    그리고 공교롭게도 요즘 재난 - 재앙에 대한 미디어를 자주 접하고 있다. 전형적인 헐리우드 재난영화인 '샌 안드레아스'를 비롯하여, 어제 엔딩을 본 '워킹데드'까지 종류는 다르지만 인류에게 찾아온 큰 재난을 다루고 있었다. 이러한 것들을 접하면서 느끼는 점? 핵전쟁, 운석충돌, 빙하기, 좀비, 전염병 창궐 등 전 지구가 위기에 빠지는 일이 오면 그 재난의 중심에서 제일 빨리, 순식간에 죽어야 된다는 것. 이게 무슨 꿈도 희망도 없는 소리인지 하겠지만, 지지부진 살아남아봐야 그 후에 느끼게 될 고통들은 사실 죽는 것보다 더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아, 염세적이야 염세적. 그래도 난 운석 떨어지면 그 바로 밑에 가 있을거다. 안녕 인류, 안녕 지구.

    어쨌든 적절한 노동이 삶의 질을 높여줌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그리고 이번 학기를 마무리하고 별 일 없으면 12월에 한국을 돌아가겠다고 마음을 먹고 나니 한결 몸이 가볍다. 그런 와중에도 나와 내가 하는 일에 대한 효용 - 과연 이게 내가 바라던 일인가, 여기가 내가 있어야 할 장소인가에 대한 고민들은 문득 들어 나를 괴롭게하긴 하지만, 그래도 마음 먹은 대로라면 이제 남은 건 고작 3개월이다. 손 닿는 데 까지 열심히 해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한다. 내일은 또 수도에 가서 병원 진료를 받는다. 5시간 걸려서 차 탈 생각을 하니 괴롭지만, 그래도 이번 병원 갔다 오면 당분간 수도 갈 일은 없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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