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D+162. 한국어 수업 3주차.
    코이카 2015. 9. 26. 02:54
    반응형

    수업

    원래 이번주 목표는 받침을 끝내는 것이었으나, 의외로 자음 + 모음의 구성에서 학습 속도가 느려진 덕분에 2번 그룹 외에는 받침을 시작하지도 못하였다. 자음 따로, 모음 따로는 이제 쉽게 인지하는 반면, 여전히 합자에서는 어려움을 보이는 것이 큰 문제. 아직까지 제시된 단어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읽질 못하니 받침까지 나가는 것도 사실은 조금 버겁게 느껴진다. 그래도 지난번 과외를 하던 3명의 학생들은 3주차에 받침까지 수업을 마쳤기에 생각보다 시간 여유를 가지고 단어도 충분히 읽히고, 이후에 자기 소개까지 마칠 수 있었는데 이런 속도로는 12월까지 얼마만큼의 진도를 나갈 수 있을런지...

    게다가 문제는 내가 진행하고 있는 학습 순서가 맞는지도 확실하지가 않다는 것. 모음 - 자음 - 받침 순으로 가르치고, 한글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게 된 뒤에 회화와 어휘 중심으로 수업을 진행하고자 하는데, 과연 이게 맞는 순서인지 비전공자인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그나마 일주일이라도 진행했던 한국에서의 직무교육도, 정작 글자부터 가르쳐야하는 학생들의 수준은 거의 고려하지 않은 채 무슨 토픽 몇급이네, 문법적 요소를 주의해야 하네 이런 소리들만 했으니 딱히 도움도 되질 않았다. 그래도 최소한 글자는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어야 본격적인 내용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이게 욕심인가 싶기도 하고. 한편 한국어가 배우기 쉬운 언어라고 많이 들어는 왔으나, 막상 글자를 학습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그렇게까지 쉬운 글자는 또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우선 받침을 가르치기가 어려운 것이 가장 큰 에러.

    또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한국어 단어 아래에 키르기즈어로 발음을 표시해 주는 것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이다. 이 방법은 처음에 글자들의 소리를 쉽게 익힐 수 있고, 단어를 쉽게 읽을 수 있게 하는 등 도움이 되는 부분이 분명 있지만, 이번 주 수업에서 그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다들 잘 읽는다고 생각했었지만 정작 비슷한 소리로 이루어진 단어들은 키르기즈어 발음이 없이는 잘 읽지 못한다는 것. 심지어 조금이라도 빨리 앞서 나가려는 아이들의 경우 배웠던 단어들의 순서를 바꿔서 물어보면 공책에 필기해놓은 순서대로 발음만 읽는다. 즉, 지금 아이들은 한국어 글자를 읽는 것이 아닌 키르기즈어 발음을 읽고 있다는 것. 아, 이건 확실히 문제다. 외국어 학습할 때 흔히 나타나는 경우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러한 경향이 계속되면 문장을 읽는데도 큰 어려움이 따르게 되니까 앞으로는 슬슬 줄여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장 조금 줄이니까 읽을 줄 아는 단어들이 확 줄어드는게 슬프지만, 원래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고 했으니 천천히 가더라도 확실하게 읽을 수 있게 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출석은 뭐, 여전히 개판 오분전이다. 심지어는 지난 목요일이 이슬람의 큰 명절 중 하나인 희생절이었기에 수요일 첫 수업에는 가장 큰누나인 11학년 여학생들이 전원 불참했다. 이를 제외하고라도 요즘의 출석은 다이나믹하기 짝이 없는데, 슬슬 매일 오는 학생들이 눈에 익는 가운데 여전히 매 수업 처음 보는 얼굴들이 종종 보이고, 띄엄띄엄 오는 아이들도 꽤나 많다. 가끔 보면 처음 오는 아이들 중에서 필기도 안하고 참여도 안하고 뚱한 얼굴로 쳐다만 보고 있는 애들이 있는데, 솔직한 심정으로는 매우 불쾌하다. 그렇다고 내쫓을수도 없는 노릇이고. 쩝. 아마 진도가 충분히 나가고 나면 어중이떠중이는 점차 자취를 감추겠지만, 불안한 출석률때문에 진도에 지장이 생길까봐 조금은 걱정이 된다.

    교사수업은... 괜히 개설했다 싶은 생각도 드는 것이, 오늘은 한 분의 선생님을 앉히고 수업을 했기 때문이다. 지난 주 단 한 명도 오지 않은 수업을 겪은 후로, 교장에게 허락을 받아서 주변의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어른들까지 모아서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하였고, 몇 명에게 전화를 돌렸지만 외부인조차 딱 한명 참석했다. 결국 총 2명을 놓고 수업을 했다지. 그나마 외부인 학생은 한국에서 일을 하다 와서 글자는 이미 다 알고 있는지라 진도도 맞질 않아서 그냥 학생반에 참석하라고 이야기했다. 기운빠지는 일이다. 그리고 그 다음 수업인 금요일 문화 수업도, 딱 두명의 아이들이 와서 들었다. 나는 새벽 세시까지 뮤직비디오를 다운받았는데 말이지.

     

     

    생활.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다. 얼마 전 칵테일의 필수요소 중 하나인 토닉워터를 발견했고, 이를 이용해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진토닉을 만들어 먹으려고 한동안 점찍어둔 헨드릭스 진을 사러 갔더니, 참 당연하다싶게 이미 없었다. 대체 이 동네에서 저걸 누가 마실까 생각하고 사두지 않았던 것이 큰 패착이었던 듯. 별 수 없이 다른 술을 구입했는데, 무려 이름이 '키르기스스탄'인 키르기즈 특산 꼬냑이었다. 맛은... 웩. 이건 니맛도 내맛도 아니고 그저 독하고 들큰하고... 토닉에 섞으니 더욱 더 못먹을 맛이어서 작은병을 사길 잘했다고 생각하고 두었다.

    그런데 의외로 재미있는 쓰임새를 발견하는데 성공했다지. 바로 요리할 때 요리 술 대용으로 쓰는 것이었다. 닭구이를 볶다가 닭냄새가 나길래 조금 뿌리고, 여러 요리 프로그램에서 봤던 것처럼 플람베를 시도해 보았는데 단박에 성공했다! 우와... 진짜 내가 요리를 잘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 쉬운 (동시에 꽤나 위험한) 행동이었다고 자평한다. 신기하게도 정말로 닭의 잡냄새를 잡는데는 성공했지만, 정작 맛은 되려 꼬냑의 잡맛이 남아서 은근 메슥거리는 약품같은 느낌이 감돌고 말았다지. 에라이.

    그리고 민족 명절인 추석이 다가온다. 수도의 사무실에서는 사무실 인원 전원이 참석하는 회식을 계획하였다고 메일을 보내왔는데... 그저 웃지요. 이메일에는 무려 '불참하는 지방 단원에게는 다른 기회에 식사를 제공한다'고 써있었다. 그런데 이 나라에 지방 단원이라고는 탈라스에 있는 우리 셋이 고작. 물론 촐폰아타에도 1명 있지만 그 사람이야 아마도 갈테니 결국 우리 세명은 애초에 참가할거라고 생각조차 안했던 모양이다. 일요일 오전 10시에 사무실에서 출발하여 1시간거리의 식당에서 뭔가를 먹는다 했으니 만약에 내가 그 회식에 참석하려면 전날 밤에 출발하여 하루를 자야만 가능한 일정. 그렇지만 사무실에서는 숙박비를 지불해줄 계획은 없고, 교통비는 당연히 지원 안될테고, 우리는 꼴랑 밥 한끼 먹자고 왕복 10시간이 넘는 길을 위험한 택시를 타야만 하고... 안가고 말지. 농담도 잘하십니다. 그냥 집에서 동기들과 전이나 부쳐 먹고, 맛있는거 해먹으면서 나름의 추석을 보내 볼 생각이다.

    아. 추석이라고 하니 문득 송편이 먹고 싶다. 수도에서라면 떡도 사먹을 수 있고, 사무실 회식도 참여할 수 있겠지만 이 황량한 탈라스에는 떡은 커녕 쌀가루를 구하기조차 힘들다. 깨송편이랑 밤송편이 먹고싶구나. 그리고 갈비찜도. 나름 잘 해먹고 살고 있어서 다시 살이 오르는 요즘이지만, 그래도 객지에서 보내는 명절은 음식 생각에 더욱 씁쓸하다. 휘영청 밝은 달이나 보며 소원이나 빌 수 밖에.

    반응형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