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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185, 한국어 교육 6주차.
    코이카 2015. 10. 19.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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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업.

    여러모로 힘든 한 주였다. 학교는 무슨 추수 감사 축제를 한다나 어쩐다나 정신 없고, 수업의 출석률은 점차 떨어져가고, 각 그룹별 진도 차이는 점점 더 나는지라 대체 뭘 하는건지 알 수 없었던 한 주이기도 했다. 수업 내용으로는 본격적인 짧은 문장 만들기에 들어가서 "이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강아지입니다." 등의 문장을 만들면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가장 빠른 반의 경우, 동물과 채소의 이름을 이용해 학생들 스스로 질문 - 대답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에는 다다른 듯. 가장 빠른 반에는 나름 한국어를 열심히 하는 여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수업 하기가 수월한 편이다. 물론 출석률이 떨어져 현재 나오고 있는 학생들이 6~8명 정도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만, 나름 말하기 연습도 가능할 만큼 진행하기에는 편하다. 이외의 다른 고학년 그룹 역시도 나름 성실하게 수업을 잘 따라오는 편이라 진도는 좀 느리지만 이제는 문장 학습이 가능하다고 판단할 수 있을 정도다.

    문제는 그 외의 두 그룹인데, 그중 좀 나은 그룹의 경우는 그래도 나름 잘 따라오는 편이니까 큰 문제는 아니라고 쳐도, 가장 어린 학생들이 모여있는 마지막 그룹은 참 문제다. 수업의 주축이 초등학교 4학년쯤 되는 어린 여자아이 4명인데다, 애초에 한국어에 큰 관심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 그나마 수업을 잘 따라오던 고학년 학생은 역시나 그 수준차에 불만을 느꼈는지 다른 고학년 그룹으로 옮겨버렸고, 이제는 어린애만 4명 남았다. 진도를 비슷하게 나가려고 해도, 집에서 글자를 전혀 외우지 않는 모양인지 글자도 잘 읽지 못하는데다 수업에 와도 마음이 다른 콩밭에 가있다는 것이 문제. 정작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복습하면 복습한다고 불만, 막상 새로운 진도 나가면 읽질 못하니 집중을 못하고, 그저 일종의 자랑처럼 수업에 들어오고 있는 것이 확실한데 또 어찌나 서로 시샘은 강한지... 생각같아서는 없애버리고 다른 고학년 학생들 글자반을 만들고 싶지만 그도 쉽지 않은 일이고.

    이외에 어중이떠중이들이 몰려오는 문제 역시도 크게 고쳐지지 않았다. 이게 이 나라 학생들만의 문제인지, 아니면 모든 학생 공통의 문제인지는 알 수 없으나, 뭔가를 체계적으로, 다져가면서 배우려는 노력이 결여되어 있다. 이번에 새로 모여든 다른 학교 학생들과 20대 청년들도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데, 세종학당에서 초급반을 떼고 왔다는 청년은 막상 글자도 생각보다 그렇게 잘 읽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말을 잘 하는 것도 아닌데 자기 진도에 안맞다고 혼자 수업을 해달라고 하더니 책을 갖다 주려고 챙겨놓으니까 또 나오질 않는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학교 학생들도 조금씩 들어와서 듣는데, 글자를 모르는 채로 중간부터 수업을 끼어 들으니 진도도 엉망이고, 수업에도 방해라서 선생님들 시간에 끼워서 글자부터 배우라고 했더니 또 그건 싫단다. 대체 무슨 배짱을 부리는걸까? 정작 글자 시간에 오라고 신신당부를 했더니 그나마도 30분이나 늦고, 참 갑갑한 노릇이다.

    답답한 얘기는 매번 똑같을 뿐이니 재밌는 얘기를 좀 하자면, 지난 금요일에는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 애니메이션을 보여주었다. 나도 못봤기에 같이 볼 겸 해서 틀어줬는데, 확실히 메밀꽃 필 무렵은 언어를 통해 내용을 인식하지 않으면 그림만 보고 이해하기에는 조금 난해한 편이었다. 물론 메밀꽃 필 무렵을 좋아하는, 아름답게 묘사된 메밀밭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일이었지만. 그에 비해 다음에 연달아 나온 운수 좋은 날은 내용이 나름 단선적인 편이라 이해하기 쉬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생각이 적중했다. 애니로 묘사도 잘 된 편이라 심지어 한 학생은 마지막에 김첨지의 부인이 죽은 채 발견되는 부분에서 눈물을 보이기까지! 아마도 이게 좋은 '이야기'가 가진 힘일 것이다.



    생활.

    지난 주의 여파 + 지랄같은 날씨 덕분에 한 주일 내내 침체되어 있었다. 한국의 맑고 쾌청한 가을은 찾아볼 수 없는, 일주일 내내 비와 구름과 안개가 뒤섞인 아주 불쾌한 날씨였다. 그 때문인지 지난 주 내내 갑자기 편두통이 심하게 와서 아직도 조금은 고생하는 중. 오늘은 심지어 눈도 왔고, 날씨도 무척 추워졌다. 습기가 많아 추위가 옷에 스미고, 포장되지 않은, 배수가 잘 되지 않는 질척이는 땅을 어두울 때 걷고 있노라면 이게 내 인생인가, 싶은 생각도 가끔씩 든다.

    이제 남은 것은 언제 귀국하는지를 결정하는 일이다. 사실 12월까지 잘 마무리 하고 가는 것이 목표였으나, 사무실을 다녀온 후로 의욕이 계속해서 바닥을 치고있다. 게다가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했던 현실적인 문제 - 주택 임차 문제까지 당장 코앞에 다가와있다. 11월 23일이면 집을 비워줘야 하고, 만일 12월까지만 수업을 한다고 하면 기껏 내가 집을 빌려야 하는 기간은 1달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이 겨울에, 고작 1달을 임차할 수 있는 아파트는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 좋은 단독주택을 가지고 있는 부자들도 겨울이면 춥고 난방비 부담이 심하다고 아파트로 꾸역꾸역 기어들어오는 마당에 고작 한달 빌릴 수 있는 아파트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집의 임차가 끝나는 11월 말에 귀국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인가? 이도 썩 개운하지는 않고... 당연히 사무실은 전혀,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그런가보다 할 테니 이 역시도 내가 정해서 통보하면 될 일이겠지. 좀 더 고민을 해 보아야겠다.

    그러는 와중에도 요리 실력은 날이 갈수록 늘어서 최근에는 살찌는 음식을 특선으로 먹고 있다. 특히나 썩는 사과를 처리할 겸 만든 사과쨈이 아주 대박이라 애정을 쏟고 있는 중. 물론 그 영향은 고스란히 지방으로 가서 쌓이겠지만, 추운 지방이니까 그러려니 해야겠다. 앞으로 점점 식재료가 줄어들텐데 요리에도 큰 문제가 생길 듯. 이제 통조림이나 인스턴트 먹는 것도 질렸다. 아마 평생 먹은 통조림보다 여기서 먹은 통조림이 더 많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고, 이젠 신선한 채소, 고기가 먹고싶다고...

    막상 간다고 생각해도 크게 아쉬움이 들지 않는다. 지금 가르치는 아이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그리고 그 아이들은 조금 아쉽지만 나도 사람이고 마음이 떠나버린 곳에 정붙이고 일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남아있는 동안 잘 마무리 하고, 최선을 다 하고 가야겠다... 고 마음을 먹는다. 의욕이 사라지니 출근할 때 마다 고민하게 된다. 아, 가야하나,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생각한다, 아, 가지 말걸. 지친다 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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