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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이카 2015. 5. 17.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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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16일에 이곳에 왔으니 어느 새 꼬박 한 달을 살았다. 한국에서의 한 달이 어땠는지 생각해보면, 이렇게 버라이어티한 일들이 일어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홈스테이에서 쫓겨나기도 하고, 새 홈스테이에 적응하기도 하고, 익숙하지 않은 키르기즈어를 배우느라 고생도 하고, 이것저것 보고 느끼면서 외국에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몸소 느끼고 깨닫고 있는 중이랄까. 물론 마냥 행복하지는 않다. 그렇다고 마냥 불행하지만도 않다. 이 세상에 후회가 없는 일이 있을 수 없으니 후회를 안 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후회만 하고 있지도 않다. 고작 한 달 지났을 뿐이니 나의 결정이 내 남은 삶에 어떤 영향을 줄 지 판단을 미리 내리는 일은 어리석을 터, 그저 묵묵히 생각하고 기록해두면 언젠가 그 기록을 되짚어 그 때의 내가 어땠는지를 반추해 볼 수 있겠지.

    여튼 이번 주말은 현지교육 프로그램 중 일부인 미션활동을 수행하는 날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미션은 1. 비쉬켁 기차역에 들러 기차 일정과 탑승 요금 알아보기, 2. 탈라스까지 가는 교통편과 요금 알아보기, 3. 키르기즈 - 한국 간, 비쉬켁 - 탈라스 간 우편 제도와 요금 알아보기였다. 자세한 설명은 첨부하는 보고서 파일로 대체하기로 하고, 나머지는 그냥 사진과 설명만.

    제99기 단원 미션활동 보고서.hwp

     

     비쉬켁 역. 진짜 작다. 우리나라로 치면 그냥 작은 도시의 역 정도밖에 안되는 크기. 그래도 여기서 출발하는 열차가 러시아 서부 지방까지 간다.

     시내의 일종의 랜드마크인 '빅 밴'(ㅋㅋ).

     우체국. 키르기즈어가 키르기즈스탄의 공식 언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부분을 러시아어에 기반하여 살아가고 있는 아이러니. 실제로 수도는 러시아어만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 키르기즈어만 배운 우리들로서는 좀 소통이 어려울 때도 있다. 이중 언어에 대한 얘기는 나중에 길게 해볼 필요가 있을 듯.

     서부 버스 터미널. 근데 버스 터미널이라고 우리나라 고속버스 터미널 등을 예상하면 크게 낭패. 주로 장거리 합승 택시와 미니버스의 집합소 쯤 된다.

    바로 이런 식으로 지역명을 써놓은 택시에 합승하는 식.

    문제는 이 날이 구름 한 점 없이 무지막지하게 지글지글 끓는 날이었다는 점. 낮 최고기온이 35도에 육박하는 엄청난 폭염이었다. 다행이 택시비가 지원되어 택시를 좀 타고 다녔기에 망정이지 아니면 타죽었을 듯. 그리고 1주년 기념으로 우리끼리는 처음으로 한식당을 가기로 했다. 그 이름도 찬란한 경복궁!

    한국사람들이 왜 한식을 찾는지 알겠다. 이미 밑반찬만으로도 밥 한그릇은 뚝딱 비울 기세. 물론 문제는 가격이 한국에서 한식 먹는거랑 비싸다는 것. 즉 가격대가 상당히 높은 편인데, 가끔 특식으로는 괜찮을 듯 싶다. 제육볶음은 사랑이니까요.

    그리고 인터넷좀 하면서 쉴 겸해서 카페에 왔다.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었는데 작년, 재작년 담임반 아이들이 동영상을 찍어서 보내준 것. 집의 인터넷은 너무 느려서 볼 수가 없었고, 카페에서 겨우 받아서 보니... 그야말로 감동 그 자체. 이에 대해서는 조금 길게 나중에 독립된 포스팅으로 쓸 예정이다.

     재작년 7반 예쁜이들.

     작년 우리반 반장 준혁이랑 부반장 현준이.

    진짜 남자애들이 이 정도를 만든건 칸 영화제에 내 보내도 될 만큼의 감동. 고맙다 얘들아. 자세한 얘기는 뒤에 따로 하기로 하고...

    오늘은 그야말로 주말, 어제의 폭염의 여파인지 힘든 일정은 생략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쉬기로 했다. 오늘 방문하기로 한 음식점은 그루지야(현 국가명 조지아)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미미노라는 식당. 키르기즈에는 전 키르기즈 대사님의 부인께서 쓰신 키르기즈 안내 책자가 있는데 거기 나오는 맛집이었다. 그루지야, 조지아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기에 별 기대를 하진 않았었는데 이게 웬걸...

     나름 귀여운 입구. 키르기즈 식당들의 특징은 입구에서 장사를 하는지 안하는지 알수가 없다는 것. 입구에서 봤을 때 닫은 줄 알았다.

     내부 인테리어에서 증폭되는 기대감. 오오. 어디 유럽에 와 있는 것 같아!

     이게 바로 충격의 맛, 맛의 충격 치즈 빵 하챠푸리. 언뜻 보면 피자지만...

     얇은 페스츄리 같은 빵 안에 치즈가 가득 들어 있는 것! 근데 이게 진짜 아주 절묘한 맛으로, 짭짤하고, 치즈 특유의 시큼한 맛에, 기름지지만 담백한 양면적인 맛을 가지고 있어 쭉쭉 들어가는거다. 그리고! 이 음식이 고작 200솜! 4000원!

     이건 일종의 스튜?랄지, 고기 조림이랄지. 토마토와 허브를 베이스로 감자, 양파 등이 절묘하게 조화된 맛. 이것 자체는 특별히 엄청 맛있다거나 하진 않았는데 치즈와 어우러져 맛의 조화가 끝내줬다.

    그리고 지금 보는데도 입에 침이 고이는 이거... 다음에 가면 이름도 알아와야겠다. 토마토를 밑에 깔고, 위에 치즈를 엄청나게 얹어서 먹는 에피타이저 같은 음식인데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의 맛. 아. 또 먹고 싶다. 둘이 먹기에는 좀 양이 많겠거니 싶었는데 딱 알맞게 먹은 듯. 이 외에도 고기 꼬치도 맛있다고 하고, 여러가지 다른 음식 종류들이 있었으니 다시 한번 가서 음식을 먹고 올 생각이다. 솔직하게 얘기하면 키르기즈에서 먹은 음식 중 가장 맛있었고, 2년 뒤에도 한국에 그루지야 음식점이 안 생긴다면 내가 차리고 말테다. 여름 휴가는 그루지아를 무조건 거치는 것으로 결정.

    뭐... 이렇다. 얼마 전 영화앱 왓차의 심심풀이 테스트에서, 나의 성향은 찰리 채플린 감독과 잘 맞다고 나왔는데, 개인적으로 찰리 채플린을 잘 모르지만 기억나는 말은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늘상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이 오락가락하고, 일주일에도 큰 일, 작은 일 번갈아가며 나를 괴롭히지만 일주일을 정리하는 시점에서는 그냥 다 지나간 일로 웃고 넘길 수 있는 것 같다. 그런 힘들로 다시 한 주를 살아야 한다. 그리고 다음 주말에 또 그루지야 음식을 먹으러 가야겠다.

    + 키르기즈에 온 이후로 정말 많이 걷고 있다. 하루 평균 10000보 이상 걷고 있는 것 같은데, 이게 나름 운동이 되는지 살이 더 찌거나 하는 느낌은 없다. 그래도 뭔가 근육운동을 해야 몸이 덜 물렁해질텐데... 탈라스 가면 할 수 있을라나.

    ++ 한 달 동안 해외에 살면서 느끼는 것은, 어차피 생활을 하는 장소가 되면 다 똑같다는 것. 물론 이 곳이 '그다지' 이국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 키르기즈라서 더욱 그런 것도 있고, 한 달 내내 가장 많이 본 곳이 어학원, 그 다음으로 많이 본 곳이 시에라 카페(ㅋㅋ)라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외국에서 살고 있다는 실감이 크게 들지 않는 것이 독으로 작용하고 있는 듯. 만약에 프랑스나 스위스처럼 이국적인 느낌의 나라에서 살았다면 달랐을까?

    +++ 문득 드는 생각은 내가 어느 환경에서도 만족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 저 곳이 만족스럽지 않아서 이 곳에 왔는데 이 곳도 만족스럽지 않다면 나는 제 3의 장소로 가야만 하는가? 그런데 그 제 3의 장소도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그렇게 돌아다니다 보면 어딘가에, 내 맘에 쏙 드는, 있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장소가 나타나기는 하는 것인지? 만약에 이 세상 어디에도 만족할 수 있는 장소가 없는 것이라면, 어느 정도의 만족도에 정착하여 남은 불만족을 달래며 살아야 하는 것인지, 생각을 하면 할 수록 모를 일들 투성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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