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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213, 한국어 수업 9~10주차.
    코이카 2015. 11. 16.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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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업.

    중간에 가을방학이 끼어 있는 관계로 수업에 대해 쓸 내용은 그다지 많지 않다. 목요일부터 시작한 방학이 월요일에야 끝났으니, 거기다가 수요일에는 학교 대청소를 한답시고 수업을 하지도 못했으니 딱 1주일 수업 한 셈이다. 이젠 남을 아이들만 남아서 수업 자체의 질은 아이러니하게도 훨씬 좋아졌다. 현재 가장 빠른 반은 '~가 아닙니다' 형식의 부정 표현과, '~의 ~' 형식의 소유 표현을 배우고 이제 본격적인 동사를 배울 차례를 앞두고 있고, 중간 수준의 두 반 역시도 저 수업에서 한 두 수업정도 떨어진 진도를 나가고 있다. 가장 떨어지는 반은 반이 완전 교체된 이후로 속도를 처음부터 시작하여 속도를 좀 내서 인사말을 배우고 있는 상태. 그 와중에 지난번에 언급 했던 개발괴발 필기하던 나이 많은 남자놈은 예상대로 대차게 나오질 않아서 헛웃음이 나올 지경. 차라리 처음부터 시작하질 말던가, 참, 씁쓸할 따름이다.

    사실 수업은 이젠 그냥 그렇다 치고 지난주는 수업 외적으로 불쾌한 일들이 좀 있었다. 하나는, 여기 대학에서 몇년 전에 활동하던 사람이 남긴 한국어 교재가 얼마 전까지 활동하던 한국계 미국인 선교사 아저씨에게 있었는데 그 아저씨가 수도로 이사가면서 남기고 간 책에 관련된 문제다. 어차피 나는 그 책으로 수업을 진행하질 않고, 내 생각에 여기에 다시 한국어 교육을 할 사람이 찾아 올 일도 없을 테고, 집에 둬 봐야 짐인데다가 어쨌거나 초급 교재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주면 집에서라도 공부할 것 같아서 학생들에게 나눠주기로 했다. 이미 수업에 열의가 없는 학생들은 대다수 떨어져 나간 상태고, 남아 있는 아이들은 어쨌거나 열의가 있는 아이들이기 때문에 책을 주면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들도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제일 잘하는 반, 중간 반 아이들이야 나와 수업한 기간도 나름 두달이 넘었고, 책을 주니 열심히 공부를 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기분 좋게 책을 줄 수 있었다. 문제는 새로 교체된 초급반. 이 아이들에게도 책을 주려고 마음먹었더니 이게 웬일, 그 동안 수업에는 오지도 않던 아이들에 심지어 그 동생까지 데리고 와서, 정작 수업에는 늦게 들어온 주제에 집중은 당연하다는 듯 하지 않고 떠들더니, 수업 끝나자마자 책은 언제 주냐고 묻는 거였다. 안그래도 주고 싶은 마음이 점점 달아나고 있던 차에 그 질문이 도화선이 되어 결국 책이 없다고 하고 주질 않았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내 책도 아니고, 주려면 줄 수도 있었지만 막상 공부 안할게 뻔한 학생들에게 그 책을 주느니 동기들에게 그 책을 줘서 한국어 수업을 할 수 있게 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하나는 방학이 끝난 뒤에 일어났는데, 그 동안 그렇게 얼굴 보기 힘들고 내 수업에는 관심조차 없던 교장이 교감을 대동하고 교실로 나타난 것이다. 아마도 기관장 회의 (심지어 우리 학교는 교장이 가질 않고 다른 선생 하나를 보냈다. 수도로 출발하기 5분 전에 와서 한국어 수업 어떠냐, 몇명 듣느냐, 이런걸 묻고 가길래 아, 이 회의도 볼장 다 봤구나 싶었던 회의였다.) 에서 이야기 한 코이카의 '아름다운 모습'을 다른 학교 교장에게 전해 듣고 이제서야 부랴부랴 관심있는 척하는 것이 뻔했다. 아이고 가증스러워라. 누가 이제 와서 그렇게 관심있는 척한다고 감동하여 친히 납시었느냐고 굽신거리겠는가. 동기가 있는 다른 학교에서도 교장이 비슷한 행태를 취하는 걸로 봐서는 사무실에서 뭔가 전화라도 했나 싶기도 하고. 고작 이런게 대책인가. 사무실이며 기관이며 참 가지가지 하는구나 싶었다.

    뭐,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그냥 이게 한계다. 코이카의 한계이자, 현지 기관의 한계다. 아마도 키르기즈 모 과장이 이야기 했던 것처럼 이런 것들을 우리가 억지로 바꾸려고 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코이카 해외봉사단의 기조라면 그냥 여기까지려니 하는 편이 속 편하다.



    생활.

    가장 큰 일은 어제 밤에 있었던 전기 사고였다. 아마도 아랫집에서 무언가 전열기구를 과다 사용한 모양인지 아파트 동 전체에 과전류가 흘렀던 모양이다. 나는 그 때 절인 배추의 물을 빼고선 귤이나 까먹으면서 쉴 생각이 냉장고를 열고 있었는데, 갑자기 냉장고 안의 불이 굉장한 기세로 밝아지더니 다른 형광등 역시도 터질 듯이 빛을 냈었다. 그리고는 정전. 한참 뒤에야 불이 다시 들어왔는데, 코드에 꽂혀 있었던 노트북을 제외한 모~든 전자제품이 바삭바삭하게 구워지고 말았다. 동기의 밥솥도 타버리고, 심지어는 전기가 흐르지도 않고 있었던 핸드폰 충전기며 전동칫솔 거치대, 전기 면도기 충전기까지 전부 타들어가서 더이상 쓸 수 없게 되어버렸다. 아아.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다행이도 김장은 무사히 마무리했고, 다친 곳은 없었지만 참... 집안 가재도구는 대체로 멀쩡했는데, 세탁기가 운명해서 골치가 아프게 생겼다.

    방학 동안은 수도에 있었는데, 수도에 있으면서 느끼는 점은 '과연 이 나라에, 특히 수도에 봉사가 필요한가'에 대한 것이었다. 이미 비쉬켁은 국제도시에 가깝게 변모했다. 아니, 자본주의에 멋지게 적응했다는 말이 더욱 적절할 것이다. 여러 지표에 따르면, 이 나라는 잘 살래야 살 수가 없다. 그런데 수도 비쉬켁에서 느껴지는 모습은 엄청난 건축 붐, 우후죽순으로 생기는 대형 마트들과, 거리에서 볼 수 있는 고가의 자동차같은, 사실상 서울보다 더 좋으면 좋았지 나쁘지 않은 모습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이러한 상황에 대해 많은 외국 활동가들은 '대체 저 돈은 어디서 들어오며, 이런 상황이 올바른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표하기는 한다. 그렇지만 겉만 화려한 것이라기 보다는 실제 생활상 역시도 그만큼이나 윤택해지고 있다. 대형 마트에서는 유럽 전역의 고급 식재료며 고급 장난감까지 논스톱으로 쇼핑이 가능하고, 최근에 생긴 많은 좋은 식당들은 서울과 거의 비슷한 가격과 서비스를 제공한다. 결정적으로 하루 급작스럽게 묵게 된 소장의 집에서 그 괴리감을 더욱 크게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안전을 위해서라지만 사실상 한국에서도 최고급중의 최고급 아파트 정도의 집에서 거주하는 모습은 꽤나 충격적이었다고 해야 하나. 이런 집이 있는 것도 신기하지만 그 아파트에 사는 것이 소장이라는 사실도 충격이었다.

    이런 점을 겪으면 결국 비교하게 된다. 물론 지금 살고있는 탈라스는 분명 여러 지원이 필요한 지역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 현재 키르기스 봉사단원은 수도 지역에 가장 많이 배치되어 있고, 모르긴 몰라도 당분간은 수도에서 봉사를 가장 많이 진행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우리가 진정한 봉사를 하고 있다고 추켜세우지만, 사실 여기에는 일이 없고, 생활 여건도 수도에 비할바가 아니다. ODA 차원에서 우리가 나가 있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럼 거기에 매몰된 봉사단원의 보람이나 2년의 시간은 어찌 되는 것인가. 하기사 대책이 있는 문제였다면 내가 고민하기도 전에 이미 해결됐겠지만... 그 괴리가 사람을 지치게 한다. 꽤나 길게 수도의 문물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였고, 발레도 관람하고 여러모로 보람있었지만 마음 한켠이 씁쓸해 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

    아, 하마터면 잊을 뻔 했다. 이번에 수도에 가는 길에 3000미터 산을 두개 넘으면서 정말 생명의 위협을 느낄 만큼의 아찔한 순간을 경험했다. 산을 넘기 전까지 멀쩡했던 날씨가 산을 넘으면서 부터 블리자드 수준으로 바뀌더니 정말 온 세상이 하얗기만 하고 한 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의 눈보라가 쳤다. 그리고 그 와중에 체인도 없는 차는 시속 100km가 넘는 속도로 달리고, 맞은편 차선에서 거대한 트레일러가 지나갈 때마다 차에서 날리는 눈발에 앞도 보이질 않고... 여름에도 위험하던 산길이 겨울이 되니 두배는 넘게 위험하지만, 사무실에서는 뾰족한 대책이 없다. 그야말로 안전불감증이라는 말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 애초에 겨울에 이 지역을 와본 적도 없는 사람들에게 무얼 기대하겠는가. 한심하구나, 한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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