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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빅 피쉬 (Big Fish, 2003)
    영화 2016. 2. 10.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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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영화 정보 :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37936)


    1. A man tells stories so many times that he becomes the stories. They live on after him, And in that way, he becomes immortal.


    2. 물론 나도 늙겠고, 언젠가는 꼰대가 되겠지만 나는 꼰대와 그들이 이야기 하는 '꼰대 서사'를 싫어한다. 이런건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닌지 심지어 '꼰대'의 대표적인 행동을 적어놓은 뉴스도 등장했다. 이 영화를 보며, 사실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은 이 '꼰대 서사'였다. '꼰대 서사'라 함은 '내가 말이야, 젊었을 적에~'로 시작되는,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나는 이렇게 했는데 왜 너는 못하냐는 가르침을 주려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로 정의하고 싶다. 물론 영화는 꼰대의 이야기와는 상당히 거리가 먼, 누구에게나 추천해도 좋을 만큼의 명작이었지만 여러 부분에서 '꼰대 서사'를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그건 이 영화가 아버지의 인생을 거슬러 진실을 찾아가는 아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허황된 이야기로 자신의 삶을 부풀려 아들에게 이야기 한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신뢰하지 않다가 아버지의 임종을 앞두고 차차 아버지의 진실을 찾아내는 아들의 이야기는 대다수의 '아들'이 보기에 그들의 아버지와 많은 아버지들이 이야기한 '꼰대 서사'를 떠올릴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본다. 나 역시도 아들의 입장에서 주로 영화를 봤었던 것 같다.


    3. 그러나 신기하게도, 이 영화는 대다수의 '꼰대 서사'가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불쾌함과 소화불량을 동반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해 준 그 자신의 인생 이야기는 꼰대스럽기 보단 차라리 사랑스럽다. 거인과 늑대인간이 등장하고, 마녀와 숨겨진 마을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팀 버튼의 손을 거쳐 기괴하지만 환상적으로 보는 이들을 사로잡는다. 이러한 '뻥'의 압권은 노란 황금수선화 밭에서의 프로포즈 장면과 공수부대 참전기에 있는데 낭만적인 이야기지만 이미 누구도, 아들과 마찬가지로 이 이야기를 사실이라고 믿지는 않을 것이다. 관객은 아버지의 뻥에 매료되지만, 아들의 입장에서 그 이면에 감춰진 팍팍한 진실이 무엇인지를 찾아 영화를 계속해서 보게 된다.


    4. 영화를 관통하는 가장 큰 암시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마녀의 유리 눈알을 통해 본 자신의 죽음 장면이다. 아버지의 연적과 다른 친구의 죽음은 명확하게 드러나지만, 아버지의 죽음은 공식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난 이렇게 죽지 않는다'는 이야기로 아버지의 죽음이 일반적인 죽음과는 다르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아버지의 임종 장면에서, 영화는 마지막 퍼즐 한 조각을 맞춘다. 아들이 묘사하는 아버지의 죽음은 그 동안 아버지의 입을 통해 되풀이되었던, 아들 스스로가 그렇게 싫어하던 이야기의 연장선상이자 대단원의 막이며, 비로소 아들이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였음을 나타내는 중요한 장면인 것이다. 아마도, 아버지가 유리 눈알을 통해 본 자신의 죽음 장면은 침대에 누워 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빅 피쉬가 되는 상상 속에 죽음을 맞이하는 자신이 아니었을까.


    5. 그리고 결말에서, 아버지의 장례식에 찾아온 인물들을 통해 아버지의 이야기가 허무맹랑한 이야기만은 아니었음이 밝혀진다. 영화의 전개부에서 꾸준히 밝혀져 온 이야기지만 아버지는 자신이 직접 겪은 사건에 알록달록한 풍선을 붙여 이야기를 꾸며냈을 뿐이다. 아들이 의심한 것과는 달리 아버지는 대부분의 인생의 사건을 실제 경험했으며 (참전까지도!) 어머니를 향한 순정을 굳게 지킨 멋진 남자였다. 그리고 아버지의 뻥이 '꼰대 서사'가 되지 않았던 이유는 아들의 출생과 관련된, 아들이 너무나도 싫어했던 그 이야기의 진실을 의사에게서 직접 듣게되면서 짐작할 수 있다. '이런 평범한 출생과 큰 물고기와 반지 어쩌구 하는 이야기 중에서 택하라면 난 후자를 택하겠다' 아버지의 거짓말의 끝이 '그러니까 너도 노오오오오력 해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평범했던 아들의 출생을 큰 물고기와 결혼반지가 난무하는 환상적인 이야기로 변신시키는, 누군가를 가르치려는 목적이 아닌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주기 위한 것이라서, 이 지점이 끝에 늘 듣는 상대의 '노오오오력'을 지적하여 가르치거나 비난하려는 '꼰대 서사'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 아닐까. 그래서 '빅 피쉬'의 이야기는 '꼰대 서사'에 지친 아들들의 맘도 끌어안을 수 있었던 것 같다.


    6. 그래서, 물론 지금도 '꼰대 서사'는 체질적으로 거부감이 올라오지만, 아버지(세대)의 이야기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심지어 그 '꼰대 서사'도 분명 그 이야기가 가져오는 결과와는 상관 없이 선한 의도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도 어렴풋 깨닫게 된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아버지와 함께 보고 싶은 영화다. 그리고 내 자식이 내 나이가 되면 함께 보고 싶은 영화다.


    덧. 이 영화를 보고 비슷한 구조의 소설 이청준의 '눈길'과 보진 않았지만 영화 '국제시장'이 떠올랐다. '꼰대 서사'의 대표격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국제시장을 보진 않았는데,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이 영화와 비교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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