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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140. 환상과 실제와의 괴리.
    코이카 2015. 9. 4.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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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래도 꼴에 일이 생겼다고 단지 하루 한 시간 정도 학교에 있을 뿐인데 그새 일주일이 지나갔다. 그래봐야 입학식 보고, 한국어 수업 할 아이들 의견 묻고 한 정도였지만 역시 인간은 적당한 노동이 있어야 삶을 보람차게 보낼 수 있는 모양이다. 오늘은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반을 구성하는 날이었는데, 갑자기 교장이 나를 강당으로 데리고 가길래 뭔가 보니 한국어 수업 할 의향이 있는 아이들을 강당으로 모두 모은 모양이었다. 무슨 게릴라 콘서트 하는 것도 아니고 눈 앞의 수 많은 학생들에 나는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대략적인 숫자를 세어봤더니 못해도 200명 이상... 세상에, 내가 학교에 근무하면서 1년에 들어간 학생 수 만큼의 학생이 눈 앞에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여긴 1~11학년까지 모두가 섞여 있는 종합학교. 물론 5학년부터 출발하긴 했지만 그래도 초등학교 학생들부터 나보다 늙어보이는 애들까지 섞여 있는 것이 현실. 이 많은 아이들이 한국어 수업을 듣겠다고 내 눈앞에 앉아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압도적인 광경에 그만 눈물을 쏟고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는 감동적인 이야기는 집어치우고, 사실 황당했다. 이 무슨 극과 극을 오가는 상황이란 말인가. 분명히 얼마 전 소문이지만 5번 학교 교장이 한국어 수업이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 때문에 나는 9월 초에 당장 기관을 바꾸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는 상태였지만 눈 앞의 이 열기는 뭐란 말인가. 물론, 이건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한국에서도 몇 학기동안 방과 후 수업을 진행해 본 나다. 아마도 공짜 + 외국인 + 한국어라니까, 거기에 더해서 친구가 간다니까 나도 심심한데 수업이나 째고 가볼까? 하고 튀어나온 놈들이 아마도 약 50%. 특히나 까무잡잡하고 누가 봐도 장난꾸러기처럼 생긴 어린 남자놈들이야 관심도 없으리라는 것은 당연한 일. 남은 반 중에서는 처음 몇 번이야 대체 저놈이 뭘 하는가, 구경하러 오겠지만 알다시피 언어 공부라는 것이 쉽지만은 않고 외워야 하는 것도 많은고로 포기 할 녀석들이 아마도 50%, 그럼 여기에 남아 있는 인원 중 실제 내 수업을 끝까지 듣고 유지될 수 있는 아이들은 기껏해야 50명 정도라는 계산이 나왔다. 이게 '실제'일 것이다. 그렇다고 어쩌겠는가. 어쨌거나 (동물원 원숭이 보듯 나를 바라보고 있긴 하지만) 아이들의 눈은 집중되어 있지, 애초에 관심조차 없었던 교장도 은근 당황했는지 장황하게 나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질 않나, 하긴 생각해보면 얼마 전에는 그렇게 나를 한국에서 온 봉사단원이라며 자랑질도 했었지, 수업을 걷어차고 다른 기관으로 보내달라고 할 수는 없는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아, 벗어날 수 없구나.

    그래서 일단 내가 생각한 조건을 들이밀었다. 학교에는 프로젝터가 없고, 그렇다고 이 재미없는 글자 배우는 시간을 그저 칠판 판서로만 때우자니 교재가 재밌는 책도 없어서 노트북 화면으로 간신히 수업을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러려면 최대 20명을 넘기면 힘들 것이라 판단했다. 그래서 15~20명을 한 그룹으로, 일주일에 45분 두번의 방과후 수업을 진행하며, 그런 반을 4개 만들어야 할 것 같다고 의견을 정하니, 뭔가 쑥덕쑥덕하더니만 아마도 나이 많은 순으로 반을 구성을 할 모양이었다. 그렇게 월화수목 수업을 구성하고, 금요일은 선생님들 중 한국어에 관심 있는 사람을 가르치기로 하고, 하루 수업 두 시간으로 끝내고 집에 오자니 내가 너무 잉여로워서 수업 끝나고 45분 한 타임을 질문과 대답 시간으로 두기로 했다. 이로서 야매 주당 15시간의 근무표를 내맘대로 완성. 이 시간표와 홍보 프린트를 내가 만들어서 내일 가져가야 한다. 수업은 아마도 다음 주에 시작하게 될 것이다.

    다행이 노는 동안 중학생 3명을 가르치면서 만들어 둔 자료가 있어서, 이를 활용하면 아마도 앞으로 한 달정도는 크게 무리없이 수업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정도면 대다수의 '환상'은 제껴져 나가 '실제'만 교실에 남아 있게 되리라 생각한다. 그 시점에서 50명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면 일단 이 한국어 수업은 성공이라고 평가해도 좋겠다. 다만,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이 수업을 시작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나서 내 생각은 차분히 정리되어 한국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재고 있다.

     

    2.

    최근 탈라스 단원들의 화제는 단연 '과연 어떻게 살 것인가 - 탈라스 이대로 좋은가'이다. 나는 뭐 워낙 투덜대는 인간이라 지난 6월부터 이 생각을 끊임없이 설파해 왔지만, 다른 두 정상적인 단원들은 그래도 2년을 살아내겠다는 의지로 강력하게 무장되어 있었는데, 최근의 몇몇 일을 통해서 그 생각이 흔들리기 시작한 모양. 일단 아픈 일이 결정적이었다. 아프면서 다들 지치고 괴로워했다. 이런 것들이 누적되어 커지는 시점에, SOS를 통해서 수도에 진료를 받으러 갔고, 공교롭게도 일정이 묘하게 겹치는 바람에 안전회의를 하러 휴양도시로 유명한 이식쿨 호수의 촐폰아타 리조트까지 다녀 왔다. 아, 비교가 불행의 씨앗이라지만, 어찌 비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모래바람 날리는 황량한 풍경, 주도라고는 해도 그저 경제 중심지로서의 역할만 간신히 수행해 내기 때문인지 어떻게든 등쳐먹으려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벗어나 누구도 '외국인'에게 눈을 돌리지 않는 수도의 묘한 평화로움과 문명의 이기, 그리고 휴양지의 아름다운 풍경과 이국적인 모습들을 보고야 말았다. 그러고 나니 '대체 내가 왜 여기서 이 짓거리를 하고 있어야 하나, 그리고 여기서 생활하는 단원들은 우리랑 뭐가 달라서 이렇게 잘 먹고 잘 사나, 그러면서 왜 그리 불만들은 많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아직 키르기스스탄 사무소에는 유숙소가 없고 단원들을 위한 숙박 지원도 없는데 아파서 수도로 간 사람들에 대한 숙박비 지원도 전혀 없단다. 물론 탈라스에서 돈 쓸 일이 없으니 숙박비가 부족한 것은 아니었으나, 한달 생활비가 520 달러인 상황에서 1박에 기본 50달러나 하는 숙박비는 정말 무시무시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3일 묵으면 최소 생활비의 3분의 1은 날아가는 것이다. 아픈 것도 서럽고, 문화적 - 자연적 혜택에서 벗어난 것도 억울한데 심지어 돈까지 더 내야 하다니! 이런 상황에서 수도 생활하는 사람들이 누리는 여러가지 '호사'들을 보고 나니 누구라도 흔들릴 수 밖에 없지 않을까. 나도 이렇게 억울한데, 하물며 20대 중반의 두 여자 단원이 느끼는 박탈감은 생각보다 컸던 모양.

    게다가 게다가! 그 믿었던 직무조차, 방과 후 수업이 아닌 정규수업이라 나름 안심하고 있었지만, 뚜껑을 열어 보니 일주일에 고작 3시간~5시간 수업이란다. 일주일에 3시간~5시간 수업하려고 여기에 온 것은 분명히 아니었고 다들 나름의 포부를 가지고 왔을 텐데... 한참의 성토대회를 거치니 드디어 나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는 시점이 같아졌다. 왜 그렇게 한국에 갈거라고 얘기했는지 알 것 같다는 말을 들으니 인식을 공유하는 기쁨이 느껴지는 한 편, 나머지 두 단원은 이런 느낌 없이 즐겁게 2년 마치고 돌아갔으면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지라 씁쓸했다.

    그렇다. 우리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해외봉사에 대한 어떤 면들은 분명 '환상'이었다. 적어도 가장 중요한 직무에 있어서만은 순도 100%의 환상이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물론 기관에 따라, 직무에 따라 잘 맞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정말 좋은 일에 힘쓰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적어도 이곳 탈라스에서는 직무에 대한 내용들은 대체로 모두 환상이었다. '실제'는 뭐냐고? 우리는 그저 외국인 잉여인력이라는 점. 하기사 정체도 모르는 외국이니 갑자기 나타나서 한국어를 가르치겠네, 컴퓨터를 가르치겠네 하면 참 어처구니가 없는 노릇이기는 하겠지만은 그래도 여기에 파견되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해보면 이렇게 인력을 낭비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사무소에서 명확하게 파견기관을 조사하고, 단원들의 능력에 맞는 자리를 탐색하고, 그 후에 잘 관리를 한다면 이런 일은 일어날 리가 없는데, 아주 당연한 부분에서부터 모든 것들이 무시되고 있다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중도 귀국을 검색해 보니... 매년 약 10%의 단원들이 중도귀국을 하며, 이에 대한 통계기사와 많은 사람들의 블로그를 읽어볼 수 있었다. 문제는 뿌리깊었다. 심지어 2006년부터 비슷한 문제로 중도 귀국한 사람들이 많고, 이를 비판하는 글들은 많지만 정작 2015년에 파견된 우리들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물론 현지 사무소에는 여러가지 큰 일들이 많기는 하다. 수십억~수백억을 오가는 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전문관들만 해도 봉사단원보다 많은 현실에서 봉사단원은 그저 '사고나 치지 않으면 다행스러운 존재'일지 모른다. 그런데 그 봉사단원들은 나름 자신과 타인의 삶을 바꾸려는 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커리어에 큰 공백을 감수하면서까지 나라를 떠나 온, 여러 번의 면접과 테스트를 통해 그 직무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고 코이카 자체에서 판단한 인물들이 아니던가? 그럼 그런 인력들이 낭비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은 최소한의 예의일진데 2006년부터 크게 개선된 점은 없어보인다. 이게 '실제'다.

     

    3.

    그래서, 결심했다. 매번 글마다 결심을 하도 많이 해서 이제 결심이 지겹지만, 그 당시의 결심들이 무엇이 일어날 지 몰라서 대비하는 결심이었다면 지금의 결심은 어쨌거나 끝이 보이는 결심이므로 조금은 다를 것 같다. 어차피 이제 수업이 구성되고 돌아가기 시작하면 정말 파행운영되지 않는 이상 내가 이 수업을 뿌리치고 다른 기관으로 간다거나 한국으로 돌아간다거나 하지는 못할 것 같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 만족하고 있자니 그건 내 인생에 대한 낭비이자 모욕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 것도 막을 수 없다. 그래서 결론은? 이 나라의 학기는 12월에 끝난다. 12월에 수업을 마치고, 혹은 그 전에 수업을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나는 그냥 중도귀국 하련다. 다른 두 단원도 지금 상당히 고민중이고, 아마도 둘은 중도귀국을 하지는 않겠지만 더 이상의 인생 낭비를 막기 위해서 무엇인가는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봉사? 중요하지. 그런데 그 봉사도 내가 행복해야 할 수 있는 것인데, 내 젊은 날의 2년을 통째로 날려가면서까지 정작 도움이 되는지 어떤지도 모르는 봉사에 목매달고 있을 수는 없으리라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뭐, 이번 학기를 수업하면서 탈라스의 한국어 1타강사로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여기저기서 스카우트라도 들어온다면 마지못해 남아줄 수는 있지만... 그럴 일은 그냥 'ㅋㅋㅋ'한 확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12월에 돌아가면 뭘 할거냐고? 글쎄, 뭘 하더라도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것보다는 행복하고 보람있게 지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드네. 그저 씁쓸함만 감도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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