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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169. 한국어 교육 4주차.
    코이카 2015. 10. 2.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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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업.

    이번 주에 드디어 받침을 끝냈다. 가르치면 가르칠수록 한국어는 결코 쉬운 언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일주일에 2시간만 수업했을 뿐이지만, 글자와 그 소리를 가르치는데만도 1달여가 걸렸다. 이는 단순히 진도를 끝냈다는 것을 의미할 뿐, 아이들의 숙련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몇몇 한국어 수업에 최선을 다하는 (혹은 머리가 좋은, 이 둘은 분명히 다른 것이겠으나 글자를 외우고 그 소리를 익히는 수준에서는 변별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많은 아이들이 글자 읽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아직도 발음을 키르기즈어로 옮겨 적는다. 지난주 수업에서 느낀 바가 있어 나는 더 이상 발음을 키르기즈어로 적어주지 않는데도 아이들은 그것을 적고, 키릴 문자를 보고 한글의 소리를 따라한다. 이것이 익숙해지고 나면 글자를 보고 바로바로 읽을 수 있는 레벨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일까? 잘 알 수 없는 부분이다.

    수업 내용에 있어 받침은 쉬운 부분과 어려운 부분이 공존한다. 이미 자음의 소리를 모두 익혔기에 아이들은 그 소리가 받침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원리에 대해서 대충은 알고 있다. 특히 자음의 이름을 가르치면서 이미 받침의 소리를 여러번 학습하였기에 기본적인 홑받침의 경우 이해하기에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겹받침인데, 사실 겹받침의 경우 모국어 사용자도 어려운 경우가 많기에 높은 수준을 단번에 기대할 수는 없지만서도, 분명 한국어 생활에 있어 중요한 부분임에는 틀림없다. 그렇다고 겹받침 구분에만 시간을 소비하자니 겹받침 사용이 또 그렇게 중요한 부분인가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고... 우선 수업은 7종성 (ㄱ, ㄴ, ㄷ, ㄹ, ㅁ, ㅂ, ㅇ) 을 제시하고 각 소리에 해당하는 받침 전부를 보여주고, 각각의 예를 들어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보여주는 식으로 진행했다. 수업 중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으나, '왜 소리가 7개로만 나느냐'라고 묻는 원론적인 질문에 대답하기가 쉽지 않았다. 저 7개의 발음을 제외하고 나머지 발음들이 어려워서 사라졌다는 식으로 설명을 하였으나 납득하였는지는 잘.

    다음 주 수업은, 우선은 글자가 끝난 만큼 한국어 인삿말들을 가르칠 생각이다. 물론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지난 번 3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수업할 때, 받침 이외에도 여러가지 음운 요소 (적어도 연음과 ㅎ축약에 대해서는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를 수업하였으나 이해시키기가 쉽지 않았다. 이번에는 연음을 빼고 바로 인삿말로 넘어가서 실제 발음을 많이 들려주는 방향으로 수업을 진행해보리라 생각했다. 아무래도 지겨운 글자 - 단어 반복에서 벗어나 문장으로 들어가는 만큼 아이들도 좀 더 재미있어하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가져본다.

    출석 문제는... 어째 점점 더 나빠지는 양상이다. 월요일에 학교를 가 보니 체육코치가 나를 불러 '월, 수 1시~3시까지 여자애들 배구 수업이 있다. 어떻게 할래?' 라고 물었다. 다행이 월-수, 화-목 두개의 수업으로 나누어있어 화-목으로 옮기면 된다고 이야기는 했지만,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이 수업을 개설할 때, 교장 및 교감과 이야기를 하고 개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들이 적합한 그룹이라고 나눠서 구성을 해줬음에도 불구하고 이제와서 다른 수업이 그 자리에 있으니 아이들을 옮기겠다니? 더욱 더 큰 문제는 결국 수업을 옮겨 주었음에도 잘 나오던 아이들도 빠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른바, 무료 방과후수업의 폐해가 본격적으로 고개를 들기 시작하는 모양이다.

    그런 한편 오만 어중이떠중이들이 수업을 듣겠다며 이리저리 들쑤시는 통에 이것 또한 골치다. 어차피 수업에 자리는 남고, 들락날락거리는 애들이 많아 고정된 명렬표로 수업을 할 수 없는 탓에 수업을 시작하고 지금까지 오겠다는 학생은 막지 않았고, 가겠다는 놈들은 막지 못했다. 다만 새로 들어오는 아이들은 당연히 진도 차이가 나고, 글자를 모르고 시작하게 되어서 금요일 1시에 시작하는 선생님 수업에서 글자를 배우라고 했더니 그건 또 싫은 눈치다. 결국 자기들을 위한 수업을 만들어달라는 얘긴데, 보시다시피, 만들어봐야 또 그 수업이 그 수업일게 뻔하고 결국 12월까지 글자만 주구장창 가르치다 끝날 느낌인지라 못하겠다고 이야기했다. 막상 수업을 만들면 열심히 와서 듣느냐면 또 그것도 아닐 것이 뻔하다. 현재 상황 상 수업을 개설한다면, 현재 있는 수업이 다 끝난 3시부터 4시까지 수업을 할 수 밖에 없는데, 12시에 학교가 끝나는 애들이 3시까지 기다릴 리가 없다. 그리고 수업 시작하기 전에 광고를 그렇게 했고, 시간표까지 게시했는데 수업 시작한지 한달이나 되서 이제와서 수업을 만들어 달라는 건 무슨 심보인가.

    게다가 수업을 좀 자유로운 분위기로 진행했더니 수업에 참석할 생각도 없는 친구들을 데려와 수업시간에 사진을 찍으면서 놀질 않나,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질 않나... 한국같았으면 진작에 엎어버렸을 일들을 꾹꾹 참고 수업을 진행하느라 울화가 치밀었다. 다음 주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면 수업을 열심히 따라오는 아이들을 위해 적당히 걸러내어 수업에 들어오지 못하게 할 생각이다. 수업 규칙이라도 한번 설명해야 할까 싶기도 하고.




    생활.

    요리혼에 불이 붙었다. 요즘 참 이것저것 이상한 걸 많이 해먹는 중. 지난 주말은 추석이어서 전을 부쳐 먹었고, 가지 튀김을 해먹었으며, 어제는 지삼선이라는 요리에 도전하여 성공했다. 이제는 레시피만 대충 있으면 뭐라도 해먹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는 중.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야채든 과일이든 점차 사라지고 비싸져서 결국 통조림이랑 인스턴트로 연명하는 겨울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요리 외에는 기분이고 상황이고 전혀 나아지질 않는다. 아마도 기관변경을 할 것 같은 (컴퓨터 수업 정규로 있어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컴퓨터실 상황도 엉망이고 수업이 방과후수업으로 3시간밖에 없는) 동기 단원과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문제는 코이카가 전적으로 '복불복'이라는 점에 있었다. 같은 키르기스스탄이라고 하나 수도단원과 지방단원의 처지는 정말로 하늘과 땅 차이이다. 기본적으로 수도에 파견된 단원들은 기관들도 전부 대학교, 정식 학과이고 일도 많다. 탈라스는? 공립학교, 방과후수업이 전부. 게다가 여가시간을 생각해보면 그 차이는 더욱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수도에서는 사실상 한국에서 생활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게, 심지어 낮은 물가덕에 더욱 더 편안하게 생활을 누릴 수 있고, 여가시간에 운동이며 외국어 학습이며 할 수 있는 여가생활의 범위도 훨씬 넓다. 탈라스는? 개뿔도 없다. 지하 벙커같은 체육관에서 운동할 것이 아닌 이상은 운동할 곳도, 외국어 학습할 곳도 마땅찮다. 그렇다고 이것이 무슨 시스템에 따라 공정하게 분배된 것이냐면 절대 아니다. 그야말로 복불복. 전부다 아메리카노를 기대하며 들이키지만 그 안에 까나리액젓이 들었는지, 사약이 들었는지는 마시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복불복의 세계 코이카.

    아마도 그래서 국내 교육에서 그렇~게 다른 단원과 비교하지 말것이며, 개인 역량을 키우라고 강조했던 모양이다. 나에게 있어 정말 할 일 없고 보람도 크게 없는, 내가 여기에 왜 와있는지를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드는 키르기스스탄이, 아마도 수도에서 할 일도 있고 할 것도 많은 단원에게는 너무나도 보람있고 스스로를 키우는 시간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심히 불쾌하다. 이건 명백히 시스템의 문제다. 좋다, 여가 생활의 문제는 봉사활동의 메인이 아니니 제껴두고, 직무 면에서만 비교해 봐도 이것은 명백히 시스템의 문제다. 파견하기 전에 각 기관을 확인하고, 그 기관에서 봉사단원이 정말로 필요한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정말로 봉사 단원에게나 기관에게나 도움이 되는 일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아마도 현지 사무소의 할 일일테고, 최소한 그 기준을 어느 정도 만족시킨 기관에 단원을 파견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최소한의 기준조차 전혀 지켜지지 않는 곳이 코이카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를 실제로 확인하고, 인력 파견 공고를 낸 관리요원은 이 동네에 딱 2번 와봤다. 작년 수요조사 할 때 한번, 그리고 우리와 같이 OJT 오면서 한번. 무슨 신도 아니고 고작 2번만에 지역과 기관 조사를 끝마치고 2년간의 봉사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려서 단원을 파견한다고? 농담도 지나치시네, 라고 할 법 하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이고 그 덕에 이렇게 살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이런 이의제기를 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늘 '그것이 봉사단원이 가져야 할 역량입니다.' 알다시피 시스템의 문제를 감추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것이다. 물론 그들이 상정하는 '봉사단원의 참모습'이란 일 없는 곳에 던져놔도 아무 사고 안치고, 사무실의 말에 순종하며,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온몸 투신해서, 없던 일도 만들고, 경제를 부흥시키고, 사회를 발전시킬 인간일테니 그 이하의 사람들에게 역량 타령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실제로 누군가는 저렇게 살고 있겠고, 그들에게 포커스를 맞추어 코이카 미담사례로 보도를 하겠지. 그런데 사무실 스스로가 해야 할 일을 유기해놓고는 그 책임은 전부 파견된 봉사활동의 '역량'에 떠넘기겠다고?

    최근 머리를 떠나지 않는 생각은 '인간에 대한 예의'와 관련된 생각이다. 아마도 대다수의 코이카 봉사단원은 꽤나 큰 결심을 하고 '좋은 일'에 투신하겠다고 자신의 삶을 걸고 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큰 결심을 한 사람들에 대해 코이카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춰, 그들의 2년이 헛되이 낭비되는 일 없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주어야 한다. 당연히 사람이 하는 일이니 만큼 실수는 누구나가 할 수 있지만, 인터넷만 검색해 봐도 2006년부터 비슷한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에서 코이카는 그들이 보내는 봉사단원의 숫자에는 관심이 있을 지언정, 그 숫자 아래 개개인의 인생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는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들의 시스템적인 오류를 인정하고 고치고자 하는 생각도 전혀 없어 보인다. 결국 또 다시 봉사단원의 역량 문제로 돌려 매도하겠지. 왜 노력하지 않았냐며. 노오오오오력!

    이 글을 쓰고 있는 금요일, 오늘도 원래는 수업이 있는 날이었지만 택시를 타고 학교를 가 보니 학교 입구에서 수위 아저씨가 수업 못한다고 막는다. 왜인지 보니 이번 주 일요일에 있을 선거 준비로 이것저것 기계를 설치하고 있다. 그래도 오늘 선생님 수업도 있고, 한국어 문화 수업도 있다고 이야기하니 오늘이 무슨 '선생님의 날'이라며 들어갈 수 조차 없이 막는다. 이미 학교는 단축수업을 해서 끝났고, 선생님들은 어딘가 가서 컨퍼런스를 하고 있다고. 나는 참으로 애석하게도 이러한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아이들 보여줄 영화를 새벽 4시까지 찾아서 준비해 놓고 수업을 간 것이었다. 하기사 고작 방과후수업하러 찾아오는 강사한테 누가 그런 사실을 알려줄 것이겠는가. 문득 발밑이 뻥 뚤려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여기서 2년을 수업을 열심히 한다고 해도, 결국 '가나다'를 맴돌이하다 끝날 것이고, 그리고 그 이후에 지속적으로 활동을 연계시킬 누군가도 오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도 들었다. 물론 사무실의 입장에서 보자면 교사들과 친해지려는 노오오오오오력을 하지 않은 나 자신의 역량 부족이고, 학생들의 출석을 끌어들이려는 노오오오오오오오오력을 하지 않은 나 자신의 역량 부족이라고 이야기 하겠지만 말이다. 하하. 그저 웃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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